현자 타이 레놀과 렌 왕국 (1932) 나의 상상


 수도 렌의 동쪽엔 제 1 항구 브라시만, 남쪽엔 제 2 항구 신하오가 있다. 브라시만은 함대 주둔지이자 체스트 제국과의 무역을 겸하고 있고 신하오는 자유항으로서 마브와의 무역을 중심으로 개인거래가 활발하다. 현자라 불리던 타이 레놀의 이름이 유례가 되어 지금의 렌 왕국이 되었는데 약 백여년전 체스트의 현자라 불리던 그가 지식층에 대한 핍박이 심했던 당시에 지식인들이라 불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몇몇의 배를 타고 개척한 곳이다. 천문학과 건축 그리고 미술에 뛰어났던 그는 이후로도 못볼 거대한 체스트 왕궁 및 난공불락의 몰텐요새를 직접 건축하였으며 지금까지 제국의 성장발판이 되어온 도로재정법과 수도재정법, 갈레온급의 시초였던 레브라스카 제작도등 제국의 등불이 될 백년지대계를 설계한 그였으나 너무 뛰어남을 계기로 일부 권력자들에 의해 지식층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것이였다.



 당시 탈출은 9대의 함선으로 탈출하였는데, 가는 도중 마지막 9번째 함선이 제국 감시대에 의해 좌초되었고 생존자들 역시 바다위에서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기록조차 안된 이 항해끝에 타이 레놀의 첫 도착지는 지금의 잉드사막으로 불리는 사막근처였고, 황무지나 다름없는 그곳을 빠져나와 다시한번 함선을 몰아서 6대는 북으로 2대는 남으로 향하게 된다. 이후 약 두달여의 항해끝에 천혜의 항만으로 유명한 지금의 제 1 항구 브라시만을 발견하였고 제국의 추격을 피해 좀더 안쪽으로 새로운 그들만의 국가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허나 제국 최고의 두뇌와 그의 준하는 수많은 지식층들이 있었지만 약 1여년간은 제국의 침공에 대한 공포에 떨며 살아야 했다. 그 뒤로도 많은 문제점이 있었는데 함선은 무장을 모두 폐기한 상태로 항해하였었고 사실 그들도 귀족층의 지식인들이라 험한 채굴작업이나 심지어 집에 필요한 벌목작업에도 관여하려하지 않았다. 그나마 먹고 살기 위해 농사들은 지었지만 꺼려하는건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들의 리더로 받들여지던 현자는 하나의 묘책을 내놓게 된다. 간단하면서도 누구나 적극적인 일을 하게 되는 방법이었는데 가장 많이 일하는 사람이 가장 큰 집을 갖게 된다는 것이였다. 먹고살기도 팍팍한데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소리도 나왔지만 결국 깨달은 이들은 누구보다 앞서 일을 하기시작했다. 대부분이 책만 들어다보던 귀족들인데 반해 루카스 브라시만은 제국 동해안 수송함대 제독출신. 브라시만家는 사실 평민출신 가문으로 가문이름조차도 제국에서 장교임명시에 내려준 것이였다. 그는 특히 벌목등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수많은 집과 목재들을 생산해냈고 이후 렌 시티라 명명될때 가장 명예로운 가문으로 브라시만이 선정되었다. 대부분 수도명은 왕의 이름을 따서 짓게되었으나 타이 레놀은 그러한 권력집중을 위험한 것으로 치부하여 비슷하지만 다른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약 2천여명이 안되던 시민들은 타이 레놀의 대탈출의 소식을 듣고 이후로도 몇몇 함선들이 당도하였고 레브라스카와 직접 항해에서 얻은 것들로 기존보다는 훨씬 작지만 뉴레브라스카의 건조도 시작하였다. 탈출 당시 55세였던 타이 레놀이 70세가 가까울 무렵에 그가 설계했던 제국 8분할 수도재정법과 도로재정법등이 다시금 재탄생하는 영광을 누렸고 그가 가장 우려했던 것중 하나였던 군창설은 그의 제자나 다름없던 루카스 브라시만의 뉴레브라스카 소속의 일백여명을 제외하곤 대부분 자경단으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레놀이 가장 후회스러운 역사라고 부른 일이 일어나게 된다.



 탈출 당시 남쪽 항로를 택했던 두대의 함선은 남쪽해안을 따라 항해하다 신성마브제국의 개척항구에 당도하였고 외지인들을 심각하게 배척하는 그들의 관습으로 인해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사실 몇몇이 탈출하여 해안을 따라 올라갔지만 대부분 반도 못가서 굶어죽거나 길을 잃어 사막을 해매다 죽었는데 마지막 생존자인 마라톤이라는 노예가 죽기일보직전 렌시티에 도착하여 지도와 상황을 넘기고 숨을 거뒀다. 결국 두 함선의 위치와 대략적인 사정을 알게된 렌시티는 지금의 제 2 항구인 신하오로 몇몇을 급파하였으나 역시나 대부분 중상이거나 죽음을 맞고 되돌아왔다. 사태의 심각성은 렌시티를새로운 국면을 맞주하게되자 현자의 제자라 불리는 루카스 브라시만도 이때만큼은 격분하여 군대의 창설을 심각하게 역설하였다.



 타이 레놀도 결국 군창설에 어쩔수 없이 동의하였고 당시 렌시티라 명명되어질때 명예가문에 선정된 여덞가문들의 투표로 루카스 브라시만의 아들인 루카스 주니어가 집정관으로 임명되었다. 한시적인 군대권한으로 부여된 이 군대는 렌시티의 첫번째 군대이자 마지막 군대이기도 했다. 일백여명의 함대소속 병사들과 이백여명의 지원자들로 이뤄진 이 군대는 막 건조가 끝난 뉴레브라스카를 타고 바다로 남하하였고 사실상 그저 큰 배에 불과한 신성 마브의 배들은 상대가 되질 못했다. 전투 사흘만에 다섯대의 함선과 오천여명의 포로를 붙잡은 루카스 주니어는 마브 인원을 제외한채 되돌아오려 했지만 생각을 바꿔 예전 탈출자들과 상관없이 모두 노예로 부리며 렌시티로 돌아왔다. 


 

 사실 도시가 커짐에 따라 필요한 자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사람이 턱없이 부족했다. 사만명에 가까운 시민들로 거대해졌지만 역시나 힘든 작업등엔 너나할것없이 피하려 했기에 과거의 잊혀졌던 달콤한 유혹이 그들을 다시금 부르고 있었다. 현자는 회의에서 목이 터저려 반대했지만 결국 브라시만 역시 그 결정에 동의했고 오천여명의 포로들은 그들의 가장 힘든 작업구역에 배치되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 



 타이 레놀은 백년을 앞선 생각으로 나라의 기틀을 만들었지만 현실과 이상의 거리감은 나이를 먹을 수록 좁혀지지 않아 그의 정신을 갉아먹었고 그의 특이한 집착 혹은 미신덕분에 그 폭이 더욱 커져만 갔다. 사실 그는 제국에 있을 당시에도 매우 검소한 생활과 노예를 쓰지않는 유일한 귀족으로 괴짜취급을 받아왔었다. 허나 그의 생각으로 시작된 이 도시에 노예가 다시금 부활하게 되자 결국 그는 큰 상심에 나이든 몸이 이기질 못해 드러눕게 된다. 이후 그의 유일한 취미였던 그림을 즐겨 그렸는데 마지막이자 9번째 작품이었던 딸 세실리아의 초상화를 그리다 죽게된다.



 타이 레놀의 죽음 이후 여덞가문은 그들로 이뤄진 의회를 설립하고 타이 레놀의 자손들을 왕손으로 대접하였으나 권력을 주지않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후 렌 왕국으로 천명하였고 의회장이 군대의 소집령과 법의 체결을 선고하는 권력을 갖게되었다. 이후 개척항구 침략을 빌미로 신성 마브와의 십여년간의 크고작은 전쟁이 있었으나 타이 레놀의 유산인 뉴레브라스카의 무패전설을 만드는 일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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