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도 조용한 어느 성안. 검은색의 돌로 만든성은 마치 서구의 고딕양식을 따른것 같았다. 창문이 많았지만 결코 밝은빛은 안들어 왔고 검은 숨결을 내뿜는 땅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만이 그것을 비추고 있었다. 날카로운듯이 들어서 있는 검은땅을 짓누르는 그 커다란 성의 웅장함은 처음 보는사람에겐 위압갑을 주고 있었다. 그곳은 마계. 어느 세계의 마계였다. 그런데 그 마계의 성으로 진입하는 사람이 있었다.
- 똑,똑
"전갈입니다 마왕님."
불투명한 흑요석으로 정교하게 깎아만든 마계의 역사가 그려진 문에는 악마와 천사 여러 혈족들이 정교하게 깎여 묘사되어 있었다. 손대기도 힘들정도로 매우 아름다웠지만 그 남자는 익숙한 환경이라는듯 크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이내 대답을 했다.
"아..그렇군. 들어오도록."
그 남자의 중후한 말소리와 함께 문이 스르륵 열렸다. 문이 열리자 붉은색의 방에 두개의 옥좌가 있었다. 한곳에 앉아있는 마계의 마왕은 이내 입에 물고있던 시거를 놓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전갈인가? 난 개인적으로 네놈 혈족들을 좋아하지 않아. 물론 어머니께서 용서하라고 하셨지만 너희들은 내 노예야."
그런 마왕에게 다가가 한쪽무릎을 굽히고 최대한 예를 표하는 그는 바로 혈족이었다. 뒤로 삐죽삐죽 세워진 머리와 이내 큰 송곳니가 그것을 증명했다.
"후훗. 카인의 후예란놈이 어느새 나같은 쓰레기에게 무릎을 꿇으나? 하하핫!?"
그를 굉장히 비꼬는듯한 마왕의 말투에 그의 내려있는 손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왕의 그런말에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마왕님. 전갈입니다. 최초이자 마지막이라는 자가 보내왔는데 편지를 열어보시겠습니까?"
"!?"
마왕의 얼굴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최초이자 마지막이라는 자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주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놓고 꺼져."
쏘아붙이는 말투로 그에게 이내 이야기를 하는 마왕은 이내 나가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는 문을 열고 나가더니 이내 조용히 이야기를 했다.
"제기랄.. 혈족의 아버지라고.. 그저 힘때문에 마계를 차지해 우릴 노예로 부리는주제에.. 빌어먹을.. 저자식만 아니었어도 인간계에서 수많은것을 누리고 있을텐데."
그러나 그 말은 그 혼자만 들은것이 아니었다. 마왕의 엄청난 감각때문에 이미 그의 말은 바로옆에서 고함을 지르는듯이 들렸기 때문이다.
"으음.. 역시 쓰레기같은 잡종들은 마음에 안들어.."
그러나 그런 그의 옆에 앉아있던 여자가 이야기를 했다. 은백색 펌이 있는 긴 머리칼에 온화한 미소를 가진 여자. 푸른색의 눈꼬리가 약간 낮은 눈은 이내 그녀를 마계의 여제가 아닌 평화의 여신으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라마네츠. 참아야죠. 당신 어머니의 명을 거역하진 않겠지요? 우리가 마계를 지배한지도 오래 되었잖아요.. 이제 이해해야죠.."
그렇다. 그의 붉은 머리칼과 핓빛 눈동자. 그는 라마네츠 였다. 어머니인 나리제냐의 명을받고 이 세계에 구원을 준지 어느새 500년이 다 되어갔다. 그런 그의 옆에 있는 것은 바로 유메하라 에리카 였다.
"하하! 그래 유메하라. 당신의 말이니까 이해할게~ 하핫!"
아까의 대신을 다루던 태도와 180도 바뀐 그의 태도. 그는 자신의 여자 이외에는 모두에게 불친절한 사람이었다. 그의 여자인 유메하라 앞에선 그 누구보다도 연약해지고 달콤해지는 마왕이었다.
"으음.. 그런데 최초이자.. 마지막이라? 누구일까요? 설마 당신에게 도전하는 무모한 용사는 아니겠죠?"
그 말을 듣고 태우던 담배를 털면서 이내 유메하라에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 어머니보다 더 높으신분이야. 이분이라면 나도 어쩔수 없어. 그분에겐 나는 그저 먼지만도 못한 존재니까."
그런 알수 없는 라마네츠의 말에 유메하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요?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길래?"
그러자 라마네츠는 이내 편지를 들더니 이야기를 했다.
"이걸 열어보면 볼수 있을거야 하핫.."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것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라마네츠의 의미심장한 말에 유메하라의 궁금증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라마네츠가 편지를 개봉하자 이내 그와 그녀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마계의 삼엄한 경비와 첩첩히 겹친 방어 마법진에도 불구하고 그냥 가볍게 나온 남자는 이내 라마네츠를 보면서 말했다.
"안녕하신가? 라마네츠?"
그의 허리까지 오는 은발에 약간은 마른 외모. 회색의 양복을 입고 백구두를 신은 남자는 이내 당황하는 유메하라 에게 얇은 미소를 띄워주었다.
"안녕하십니까 레인님."
라마네츠가 담배를 급히끄고서 그에게 예의를 취했다. 그랬다. 그의 이름은 레인이었다. 최초이자 최후인 모든것의 절대자. 절대로 그를 이길수 없으며 우주보다 더 먼저 존재했던 그. 그런 그에게 한낱 마계의 마왕따위는 몸풀기정도도 안되었다.
"아.. 이분이 레인님..?"
유메하라도 이내 분위기를 알고서 격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마계에 있으면서 늘 받아왔던 대접이었지만 이번에는 자신들과는 격이다른 존재를 만났기 때문에 예우를 취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하핫. 역시 혈족의 후예답군.. 나리제냐가 너에게 예의란건 잘 가르친거 같아."
"과..과찬이십니다.."
라마네츠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기 시작했다. 그를 이번이 세번째로 보는것이었지만 그에게서 나오는 중후한 힘과 자신을 압박하는 무언가가 이내 그를 더욱더 존대하게 만들었다.
"아. 미안하지만 예의,격식 이란건 인간들에게나 통하는 소리야. 나에겐 통하지 않아. 내가 말했지 않은가. 나에겐 격식이 필요없다고. 하핫.. 일어나도록. 라마네츠."
라마네츠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유메하라도 몸을 일으켰다. 이내 레인의 입에서 말소리가 들리자 그들의 긴장이 풀렸다.
"으음. 내가 부탁을 할게 있어서 말이야."
"네에? 무슨부탁이십니까?"
라마네츠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자 그런 라마네츠를 보더니 이내 말을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다.
"으음.. 자네는 모르겠지만 여러 이유로 멸종되어가는 종족들이 있다네."
"..네에?"
레인이 말하는건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듯 했다. 그러나 레인에겐 실수란 없었다.
"자네의 손자인 네마레츠는 아직도 잘 자라고 있는가? 난 그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줄려고 하네."
레인이 담배연기를 뿜으면서 라마네츠에게 이야기를 했다.
"흐음..그렇습니까? 부족한 제 손자놈을 위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참고로 라마네츠의 아들인 네스란츠.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명을 따라 최강자가 되는 훈련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여자인 로시타와 결혼을 해서 낳은 아들이 바로 네마레츠이다.
"아니야. 그냥 거기 가서 선생노릇만 하면 되는거니까. 하하핫.. 참고로 인연도 생기겠지? 자네처럼... 후훗.."
레인은 살며시 웃으며 라마네츠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라마네츠는 이내 말을 했다.
"그럼 제 손자놈을 레인님이 데리러 오신다는 겁니까?"
라마네츠는 의아하다는 듯이 레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레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화답을 했다. 그리고 유메하라에게 레인이 말했다.
"유메하라. 라마네츠가 당신에겐 아주 살갑더군 후후훗.. 우리 궁전안의 메이드들처럼 말이야.. 하핫.."
알수 없는 말을 하고 사라진 레인은 이내 희뿌연 안개에 휩싸이더니 어느곳에서도 안보이는 곳으로 차원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아.. 유메하라. 네마레츠에게 정말 좋은 기회가 생겼군.. 하아.. 그녀석이 레인님에게 합격점을 받을지 문제야.."
한숨을 쉬면서 이내 라마네츠는 긴장을 풀었다. 자세한건 모르지만 레인에겐 절대적인 신뢰를 할수 있었다. 그리고 네마레츠에게 연락을 취해 레인과의 접선을 준비하라고 당부해두었다. 밝은 모습의 네마레츠는 이내 조부에게 예를 취하고 레인과의 접선을 준비했다.
"흐음. 네가 네마레츠인가?"
레인의 가벼운듯하며 무거운듯한 말에 네마레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화답했다. 그리고 레인의 손을 잡고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것이 타워 오브 레인.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종족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든 이종족 교육시설. 레인이 네마레츠를 데려간 이유는 거의 멸종해버린 자신의 피를 못찿는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겨 그를 보내 감싸주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작으면서도 큰 움직임이 시작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