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06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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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에 기름을 넣고, 실론티 한 캔을 사서 마신 후 다시 달렸다. 한국의 국도는 한산했으며 마주 오는 바람은 날 기대와 흥분에 들뜨게 만들었다. 그녀를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까.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설렌 마음 뒤로 두려운 마음이 자리 잡았다. 날 반가워하지 않으면 어쩌지? 만약 그녀가 새로운 남자와 결혼해 잘 살고 있다면 난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되돌릴 수 없는 여행이 되었기에, 난 계속 바람을 가르며 남쪽으로 내려갔다. 앞으로 7개월간은, 남에게 피해를 줘도 내 마음이 편하게, 남들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살고 싶었다. 죽을 사람의 시기어린 질투쯤이어도 좋았다.

도로표지판은 문단이 20km 남았다고 알려주었다. 옛날엔 문단 면이었다가 신 민주주의식 거점개발 어쩌고 하는 것의 시범지역으로 지정되어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시’로 승격한 문단은 몇 년 전만해도 지하철 건설을 앞두고 있는 현재발전진행형 대도시였다. 그러나 이후 대통령이 바뀌고 계획은 일절 취소되었고 국민들의 반발은 무시되었다. 외신들은 나라를 비판했으며 측은지심의 눈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을 바라봤으나 그 대통령마저도 바뀐 지금 문단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잊혀 져 가고 있었다. 재개발의 여지는 없었다. 거대한 유령도시쯤으로 변해버린 문단은 그래도 평범한 도시인구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아마 다시 문단이 빛을 받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주위는 어두워졌다. 7월의 하순. 짧은 여름의 밤이 시작되었다. 작은 스쿠터 라이트에 의존해 한참을 더 달린 나는 겨우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니, 집이라고 해야 하나? 난 잠시 어리둥절했다. 작은 2층 상가 건물 간판에는 작은 영어로 ‘What CD?'라고 적혀 있었고 안은 깜깜했다. 2층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시간은 10시 30분. 이곳은 분명 ’집‘ 이었다. 그렇다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건가? 난 수없이 내가 메모해 온 주소와 이곳의 주소를 비교 해 봤지만 다른 곳이라곤 없었다.

*

눈이 스르르 감겼다. 작은 가게의 유리에 기대앉아있는 난 도시의 부엉이였다. 새벽 한시. 이제 슬슬 거취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텔을 가든 찜질방을 가든 어디론가 가야한다. 암, 그래야 하지. 하지만 다시 눈앞이 흐릿해지는 건 왜일까.

“저기요.”

당신도 생각 해 봐요. 왜 그런 것 같아요?

“저기요?”

자꾸 어께랑 머리 툭툭 건들지 마요, 머리에 종양 커진다니까.

“……지 말라니까.”

“네?”

난 짧게 신음을 내뱉은 다음 곧바로 직립했다. 내 눈앞엔 나보다 키가 조금밖에 작지 않은, 짧은 쇼트 컷의 여자가 서 있었다. 양 귀의 은색 귀고리가 밤빛을 받아 반짝였다.

“저기, 가게는 폐점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요.”하고 말 한 그녀는 날 미심쩍은 눈으로 올려다봤다. 그녀는 날 알아보지 못했다. “무슨 일이시죠?” 그녀의 말에 난 잠시 동안 먹먹해 져 있었다.

“흐음.”

그녀가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112 버튼을 누르려 할 때, 난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뺏어 폴더를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아까 무심코 지나쳤던, 가게 유리에 붙어 있는 종이를 떼서 그녀 앞에 내밀었다. 그곳에는 ‘아르바이트생 구함.’ 이라는 글씨가 궁서체로 적혀 있었다.

Who's 날삶

죽어가느냐 살아가느냐. 그것에 따라 인생은 판이하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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