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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스는 산을 걸었다. 어제처럼 곰을 잡기 위해서도 아니고 며칠 전 발견했던 이종족에 관한 일 때문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10년 전부터 해 온 일상 같은 일을 반복하려는 것뿐이었다. 산의 능선쯤에 도착하자 땅에 꽂힌 삽이 보였다. 비하스는 그것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비하스의 옆으로는 무작정 파헤쳐져 속살이 드러나 버린 산의 모습이 있었고 반대쪽으로는 그가 앞으로 파야 할 단단한 흙들이 있었다. 비하스는 깊숙이 땅 파는 일을 계속했다. 해는 벌써 하늘 꼭대기로 등산을 시작했고 그림자는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삽이 흙을 도려내는 소리가 산을 뒤덮은 지 오래, 그림자가 반대쪽으로 길어지기 시작할 때 쯤 비하스는 삽을 멈추었다. 마지막으로 삽을 꼽아 놓을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메마른 소리가 비하스의 귓전을 울렸다. 비하스는 살짝 동요했지만 다시 날카로운 눈빛을 되찾고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삽질은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 거의 흙을 긁어내다시피 해서 비하스가 파낸 것은 바로 앙상한 해골 세 구였다. 비하스는 떨리는 눈으로 해골 하나하나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어머니……. ……허큘러.”


비하스는 미칠듯이 슬픈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계속 바라보았다. 태양이 산 너머로 사라지려 할 때도 바라보았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빛이 거의 남지 않았을 때도 그것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비하스의 입이 달싹거렸다.


“…….”


비하스의 앞쪽에서 푸른 불꽃이 생겨났다. 해골들이 어떤 힘에 의해 들어 올려졌다. 푸른 불꽃은 커지더니 금세 해골들을 집어삼켰다. 불꽃과 해골은 10초도 안돼서 모두 사라졌다. 비하스는 허공으로 손을 휘저었다. 손에 하얀 가루들이 묻어났다. 그는 자신의 목걸이를 꺼냈다. 팬던트를 대신하는 작은 유리병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코르크 마개를 열고 손에 묻은 하얀 가루들을 유리병에 고이 흘려 넣었다. 마개를 닫은 비하스는 손을 툭툭 털고 뒤돌아섰다. 비하스의 눈매는 어느새 다시 날카로워 져 있었다. 그는 그 눈매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앞으로는 앞만 보고 살아 갈 사람처럼.


====


[마법사라는 것은 이 땅 위에 존재할 수 없게 됐다. 왜냐하면, 신교가 신을 거스르는 자들로 마법사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신교는 대륙 전체에 만연하고 있는 종교였다. 그들은 신을 자연이나 하늘 혹은 세상이라고 생각했고 성직자들만이 신의 힘을 당당히 사용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자연의 힘을 임의로 사용하여 부조화를 일으키는 마법사들의 존재는 그들에게 눈엣가시로 보여 질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성직자들과 마법사들의 대립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본래 이 현상은 대립이라고 볼 수 없었다. 서로가 대립하기엔 마법사들의 세력이 너무나 약했기 때문이다. 마법이란 분명 배우기 어려운 학문이었고 설사 학문을 깨우친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오랜 수련과 재능이 필요했다. 물론 그 노력의 대가로 엄청난 힘이 주어지긴 하지만 그 힘을 얻는 자들은 극소수밖에 없었다. 신교가 위세를 떨치기 전만 해도 고명함의 상징이었던 마법사가 신교의 간단한 탄압에 급속도로 권세를 잃게 된 것도 배우기 어렵다는 점과 마법사를 대변해 줄 존재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마법사라는 이름도 사라지고 마귀, 혹은 마녀라 불러지게 된 이들은 이제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을 대변해 줄 사람 또한 이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난 책을 덮으려 했다. 그때 내 옆에 앉아있던 허큘러가 급하게 내 손을 잡았다.


“라비욜! 나 아직 덜 읽었어!”


허큘러는 내 손에서 책을 낚아채 갔다. 그리고는 그것을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난 허큘러가 다 읽기를 기다렸다가 뒤통수를 한 대 쳤다.


“빨리 좀 읽어라, 너 아직 글자도 못 깨우쳤냐?”


허큘러는 그냥 웃기만 했다. 단풍이 지는 가을 오후의 텅 빈 교실에는 나와 허큘러밖에 없었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하교한지 오래였고 나는 다른 아이들과 별로 친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없는 것이 더 편하지. 사람이란 원래 자신과 친한 사람과 있는 게 더 편하니까.


“가자.”


난 빠른 걸음으로 학교를 빠져나와 서점으료 향했다. 허큘러는 자신의 책가방을 챙겨 오느라 좀 늦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허큘러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래도 허큘러가 날 따라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이렇게 하는 게 효율적이기도 하니까. 내가 서점에 도착해서 책을 고르고 있을 때 쯤 허큘러가 도착했다.


“라비욜, 오늘은 또 무슨 책 살 거야?”


허큘러는 매일매일 책을 한 권씩 사는 날 무척 신기한 생물로 여겼다.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 중에서 하루에 한권씩 책을 꼭 읽으며 그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면서.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데 오히려 허큘러가 은근히 그런 것에 신경 쓰는 눈치다.


“라비욜, 나 심심해. 애들이랑 같이 비석치기 하자, 응?”


내가 허큘러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책을 고르자 라비욜이 응석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살 책을 골라서 계산대로 가져갔다. 종이봉투에 담겨진 책을 가지고 서점을 나와서 난 허큘러에게 말했다.


“놀고 싶으면 애들이랑 놀면 되잖아? 훠이 훠이.”


“안돼! 너 없으면 재미없단 말야.”


“난 그런 거 관심 없으니까 너나 가서 해. 난 집에 간다.”


난 또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허큘러의 발소리가 들려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거의 매일이 이런 일들의 반복이니까. 내가 이렇게 차갑게 허큘러를 대해도 허큘러는 항상 날 따라준다. 난 그걸 아니까 이렇게 하는 거고. 사실 이 녀석이 가끔 가다 가식 섞인 말을 하거나 자신의 마음을 속일 때는 좀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어느새 허큘러는 내 옆에 와 있었다.


“왜 따라 오냐? 놀러 간다며? 가.”


“아니, 너랑 같이 갈래.”


“주관도 없는 놈.”


“히히, 근데 그건 무슨 책이야?”


“종교와 옛날 마법사들에 관한 얘기야.”

“아, 아까 그 책 보고 흥미가 생겼구나? 그래도 마귀 같은 게 나오는 책은 안 읽는 게 좋지 않아? 우리 부모님은 읽지 말라고 하시던데. 뭐 그런 내용이 있는 책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이건 성직자가 신교와 마법사들에 관해서 쓴 책이니까 유통될 수 있는 거지. 교리에 맞는 거야, 바보야.”


Who's 날삶

죽어가느냐 살아가느냐. 그것에 따라 인생은 판이하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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