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1126 추천 0 댓글 1

한 남자가 산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허리까지 오는 깡마른 잔가지들을 장검으로 쳐내며 올라가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돌아올 때 찾을 길을 만들려는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벌써 산 주위로 짙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그러면 그 길은 의미를 상실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는 길 만드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길이 제구실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이, 남자는 앞을 향해 거의 뛸 기세로, 아니. 뛰지 못해서 걷는다는 투로 사납게 걸었다.


====


남자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네발을 사용하는 그것은 위쪽으로 보이는 큰 바위를 향해 뛰고 있었다. 바위 근처에 다다른 그것은 잽싸게 바위 위에 올라서서 자신을 쫒아오고 있는 인간을 노려보았다. 인간은 바위 위에 올라있는 그것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늦췄다. 인간은 조용히 그것을 응시하며 바위 주위를 돌았다. 그것이 그르릉거렸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바위 주위를 걸었다. 인간이 바위 주위를 돌다가 그것과 거의 비슷한 높이에까지 위치하게 됐을 때, 그것은 성난 포효를 내지르며 인간에게로 뛰어들었다. 인간은 그것의 발톱에 비해서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장검을 앞으로 찔렀다.


====


남자는 길을 걸었다. 10시가 넘은 밤거리에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많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남자에게로 집중돼 있었다. 그 시선의 이유는 남자가 들고 있는 작은 보따리 때문이었지, 남자의 왼쪽 허리에 차여 있는 장검이나 왼쪽 팔목 근처에 장착된 간이방패 때문은 아니었다. 적어도 장검과 방패에선 피가 나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흰 천으로 싸여져 있던 작은 보따리는 이제 원래 색을 알아보기 힘들게 변해있었다. 안의 내용물에서 배어나온 피가 천을 붉은색으로 물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는 주위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일 아침이면 길바닥에 굳어진 피를 보고 한숨을 내쉴 환경미화원들을 걱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남자는 그냥 길을 걸었다.


====


문이 열리며 어둠이 들어왔다. 아니, 코스모스는 생각을 바꿨다. 그것은 어둠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문이 닫히고 그 사람을 몰아붙이던 어둠은 사라졌다. 코스모스는 그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곧 경례를 올려붙였다.


“다녀오셨습니까! 비하스 추철 제 1 아치 에너미님!”


비하스는 코스모스의 외침 비슷한 인사에 대답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비하스는 자신이 가져온 보따리를 코스모스의 책상 위에 던지듯 올려놓고 장검을 풀어 대충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지친 몸을 소파 위에 얹었다. 비하스가 소파에 앉는 것과 거의 동시에 코스모스의 비명이 들려온 것 또한 늘 있었던 일이기에 비하스는 그것을 무시했다. 코스모스는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저, 비하스님? 그러니까 오늘은, 어, 뭔가요?”


지나치게 반점이 많이 들어간 더듬거림 뒤로 비하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곰. 갈색 곰이었지. 그 속에는 발톱 몇 개와 그놈의 눈알이 들어있다. 피가 배어 나오고 있으니까 처리 할 때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만을 사용해 보따리를 들고 있던 코스모스는 결국 그것을 바닥에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우물쭈물하고 있던 코스모스에게 비하스가 불쌍하다는 투로 말했다.


“이제 넌 퇴근해도 될 것 같은데. 찍고 가.”


‘넌 항상 내가 일의 증거로 가져온 물건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니까, 늘 하던 대로 내가 대신 그것을 수거함에 넣고 피를 닦을 테니 너는 그 일을 네가 한 걸로 하고 증명서류에 도장만 찍어 주고 퇴근 해’라는 긴 문장을 ‘찍고 가’라는 간단한 말로 표현한 비하스는 몸을 일으켜 보따리를 주워들었다.


코스모스는 도장을 찾기 시작했다. 책상 위를 마구 휘젓고 있는 터라 모서리가 피에 젖은 서류더미들이 금방이라도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지만 코스모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한참을 찾던 코스모스는 결국 서류더미에 깔려있던 나무도장으로 무사히 서류에 날인할 수 있었다. 날인을 마친 서류를 노란 파일에 집어넣고 자신의 출퇴근용 가방을 집어든 코스모스는 비하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거함으로 통하는 뒤쪽 문이 열리고 비하스의 모습이 보였다. 코스모스는 자신의 가죽 크로스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저, 오늘도 여기서 주무시는 건가요?”


“그래. 그나저나 며칠 전에 올린 보고서는 제대로 왕실에 전해졌나?”


“네. 그건 그렇고, 매일 소파에서 주무시면 병이 날 텐데요.”


“괜찮다.”


코스모스는 곧장 난색을 표하는 얼굴이 됐다. 그러나 비하스는 그 표정을 무시하고 아까처럼 소파에 드러누웠다.


“저, 그럼 퇴근하겠습니다!”


후반부에 묘하게 악센트가 들어간 코스모스의 말에 비하스는 대답대신 손을 들어 휘적휘적 저었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난 후로, 이제 이곳에는 아무런 소리도 남지 않게 됐다.


====


성 안은 소란스러웠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복도에는 수행원들과 직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떨어진 서류를 줍는 직원, 상사에게 꾸짖음을 당하고 있는 직원들도 보였다. 그러나 이런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한 곳만은 정적을 지키고 있었다. 그곳은 국무 회의실이었다. 국무 회의실에 앉아있던 수호기사 궈동 슈러하는 자신이 이 정적을 깨야한다는 것과,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궈동 슈러하는 말했다.


“오늘, 전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됐습니다.”


국무 회의실에 모인 17명의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숨을 가다듬거나 침을 삼켰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궈동 슈러하는 한층 더 긴장해야 했다. 궈동 슈러하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인간의 신물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17명, 아니 궈동 슈러하를 제외한 나머지 16명은 그 사실에 대해 언급할 수 없게 됐다. 그의 말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성물이 무엇이며, 그것이 제 기능을 하지 않아서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궈동 슈러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분들을 비난할 목적은 아닙니다만. 혹 신물에 대해서 아는 게 있으십니까?”


사람들은 헛기침을 하거나 턱수염을 쓰다듬거나 고개를 숙임으로서 자신의 무지를 표현했다. 궈동 슈러하는 말을 계속했다.


“괜찮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야 알게 된 사실이니까요. 일단 신물에 대해서 설명을 해 드려야겠군요. 신물이란, 지금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추측해볼 때 그것을 발견한 종족에게 무한한 번영을 선사 해 주는 신비로운 무언가 입니다.”


주위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나 궈동 슈러하는 다음에 할 말을 정리해야 했기에 소란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결국 나머지 사람들 중 몇몇이 제지를 하고 나서야 소란이 멈추었다. 궈동 슈러하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은 발견했습니다. 인간을 확장시킨 왕, 발헬서 수구마탈이 그 거룩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의 시대로부터 300여년이 흐른 지금, 인간의 신물은 기능을 멈추었습니다.”


국무 회의실은 아까보다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그중 의심 많은 한 사람이 물었다.


“그 말이 확실한 사실입니까?”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궈동 슈러하는 숨을 가다듬었다.




==========

띄어쓰기가 어떤지 모르겠네요... 이상하다 싶으면 수정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장엄한 상상으로 시작된 엄청나게 판타스틱한 이야기였습니다만 그 상상이 저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이유로 사양길에 접어들게 된 엄청나게 불운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유령회원의 거의 몇개월만의 개시글이 이런 싸구려 소설이 된것만 해도 죄송합니다만 소설 게시판의 활성화를 위해....   그럼 전 고성능님의 글을 기대하며 드라마나 봐야겠네요.

Who's 날삶

죽어가느냐 살아가느냐. 그것에 따라 인생은 판이하게 바뀐다.

Comment '1'
  • ?
    YR·IS 2009.03.03 01:23
    재밌게 읽었습니다 ^^
    일단 약간의 수정을 요하는 부분이 보이나 그것은 일단 넘겨두도록 하겠습니다. 중간 중간 어색하게 넘어가는 부분도 있으니 작가이신 날삶님께서 직접 퇴고작업을 하시면서 찾아보시는 것이 더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이전까지는 모든 작가분들의 글을 읽고 틀린 부분을 지적하며 알려드렸는데 아무래도 직접적인 도움보다는 작가분이 그 부분을 찾게 하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흐흐..

    아무쪼록 좋은 작품 계속 올려주세요~

포인트 안내 - 글 작성: x / 댓글 작성: 1

List of Articles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그외 [이벤트 발표] 꼭 봐주시길 바랍니다 4 YR·IS 08.12 2813
공지 그외 [이벤트종료] 상상소설 게시판 회생 이벤트 23 YR·IS 07.24 3938
공지 그외 [공지] 투데이 베스트 시스템 YR·IS 03.01 3251
공지 그외 [공지] 주의사항 필독하세요!! 1 YR·IS 03.01 3345
65 판타지 Jet-Black Blade - 서장 7 YR·IS 03.01 1160
» 판타지 신과 신도와 마법사......1 1 날삶 03.01 1126
63 게임 [SAD단편]동굴전이야기 1 피해망상걸린인형 03.01 1123
62 그외 숲 이야기 - Prologue 1 은눈 03.01 1086
61 그외 Storm of Arkham : 1 2 덴  03.02 1167
60 판타지 창생蒼生의 나인시드nineseed - 00. 2 쾌남 03.02 1037
59 판타지 Red invasion - 1 3 고성능 03.02 984
58 판타지 신과 신도와 마법사......2 1 날삶 03.02 1010
57 그외 Storm of Arkham : 2 5 덴  03.03 1293
56 그외 Storm of Arkham : 3 1 덴  03.05 1219
55 판타지 신과 신도와 마법사......3 날삶 03.06 983
54 그외 Storm of Arkham : 4 5 덴  03.06 1146
53 판타지 창생蒼生의 나인시드nineseed -01- 쾌남 03.07 1025
52 퓨전 H.O.F 1 레몬파이 03.08 102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