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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그라비티 김정률 회장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인데도, 패키지 게임들의 전성기는 아련하게 느껴진다.스타크래프트 이전 시대를 풍미했던 삼국지, C&C 등의 외국 명작 게임뿐 아니라, 퇴마전설, 창세기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등의 훌륭한 게임을 앞세운 순수 토종 개발사들의 약진도 눈부셨던 시절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게임 자체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나아지기 시작하던 시기로써, IMF 이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속도로 광대역 인터넷이 보급되고, IT 산업의 판도 자체가 크게 확장되면서 패키지 게임 산업의 핑크빛 미래는 보장되어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개발자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광대역 인터넷에는 수많은 불법 복제, 이른바 와레즈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까운 친구들끼리 주고 받는 디스켓을 통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던 잘못된 게임 복제가 이러한 음지의 와레즈 사이트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면서, 패키지 게임 업계는 순식간에 그 기반을 상실하고 무너져 내렸다. 외국 게임 업체들은 국내에서의 패키지 사업에서 손을 떼거나 그 규모를 축소했으며, 국내 업체의 사업 포기 사례 역시 속출했다.  이것이 세계를 호령하는 패키지 게임 산업의 맹주가 될 뻔 했던 대한민국의 안타까운 과거다.

이제 다시 2004년 현재를 논하고자 한다. 이제 우리 나라의 온라인 게임들은 감히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수준에 도달했다. 온라인 게임은 개발에서부터 수많은 전문가들의 노력과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지적 상품이며, 베타 서비스 단계를 지나 상용화에 이르더라도 게이머들에게 즐거운 게임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유지 및 보수가 요구된다. 또한, 급변하는 게이머들의 취향에 부응하고 쉴 새 없이 발전하는 컴퓨터 사양에 발맞추기 위해, 게임 업체들은 보다 나은 차기작 개발에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개발 업체가 이러한 모든 작업을 아우르는 건전한 활동을 영위하는 데에는 분명 적지 않은 재화가 필요하며, 이러한 자원은 결국 온라인 게임을 통해 즐거움을 누리는 수혜자인 게이머들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건강한 공생 관계이다. 게임도 분명한 하나의 상품이라는 점에서,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제공되는 가치의 정당한 대가는 반드시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다시 독버섯처럼 생겨나는 프리 서버는 이러한 상생의 순환을 여지 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단순히 개발자의 원 의도를 무시하고 게임을 함부로 조작함으로써 유저가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을 희박하게 만드는 프리 서버의 문제점은 차라리 논외로 하자. 프리 서버로 인해 정직한 유저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유저의 감소로 인해 생겨나는 개발 업체들의 고통 역시 일단 제쳐두기로 하자. 필자의 관점에서 프리 서버를 둘러싼 많은 문제점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프리 서버의 운영자들과 그 유저들이 이러한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게임을 대가 없이,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유혹이, 결국 작게는 게임 업체를, 크게는 우리 나라 게임 산업의 미래를 망칠 수 있다는 문제 의식의 부재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법원이 프리 서버를 공식적으로 ‘불법’으로 규정, 이를 운영해 온 사람들에게 형사 책임을 물은 것은 다분히 고무적이다. 물론, 이번 결정을 통해 ‘불법’ 프리 서버를 근절할 수 있는 업계 차원이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업체들이 노력한다고 해도 정작 게이머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태는 앞으로도 되풀이 될 것이다. 처벌의 경중을 떠나, 이번 판결이 ‘불법’ 프리 서버에 대해 “한번쯤 해볼 수도 있다"는 식의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게이머들에게 그 문제점과 폐해를 널리 알리고, 혹시라도 이러한 유혹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가히 '혁명'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유례 없는 속도의 발전을 이룩한 온라인 게임을 바라보는 게이머의 의식 역시 그만큼 빠르게 발전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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