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온라인 게이머들에게 특정한 몇몇 단어들은 상당히 민감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 온라인 게임들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준다고 생각될 만큼 이들 단어들은 일상적이지만 언제나 생경한 느낌이다. 피케이(PK, Player Killing)라는 단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게임 속에서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했거나 누군가를 괴롭혔거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든다면 당신은 한국의 대다수 평범한 온라인 게이머가 맞다. PK시의 긴장감과 같은 말초적인 느낌이 먼저 떠오른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기저에 무엇인가 부정적인 것이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현재 클로즈 베타 테스팅을 진행중인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는 2개의 서버를 가지고 있다. 이중 연합간 서버라고 불리우는 PvP서버에 대해 테스터들의 논쟁이 치열하다. 그 논쟁의 대부분은 일반적인 국내 게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모적인 논쟁, 즉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와 같은 잘잘못을 따지는 행위이다.
와우를 비롯한 여러 해외게임들에서 PvP서버는 PK에 관하여 게이머들에게 거의 무제한적인 자유도를 부여한다. 흔히 괴롭힘으로 분류될 수 있는 행위, 즉, 상대 캐릭터를 반복적으로 죽이거나 그의 플레이를 방해하는 것조차 허용함으로서 그들 게임속의 풍경은 마치 아비규환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의 정상적인 플레이가 아닌 오직 PvP를 위한 서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 이외의 다른 컨텐츠를 정상적으로 즐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들 PvP 서버의 대부분이 일반적인 서버들보다 접속자수가 적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국내 와우의 PvP서버는 이상하리만큼 접속자 수가 많다. PvP서버가 개설되면서 일반서버에서 플레이중이던 이들이 새로운 서버에 정착했고 신규 테스터들마저 일반서버보다는 PvP서버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어디서나 다툼이 생기게 마련이다. 특히나 PvP서버이기 때문일까, 여러 팬사이트를 비롯 게임속 채팅창에서도 게이머들의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양상을 두고 일부 게이머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PvP서버의 룰조차 모른다', '그런 것이 싫다면 일반서버로 가라'.
한때 큰 인기를 모았던 게임동영상. PK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들 논쟁의 핵심에는 언제나 한가지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다소 거부감이 들 수 있는 단어인 '뒷치기'. 이 단어에는 성적인 은어라는 면에서 풍기는 터부적인 느낌부터 상대 캐릭터의 약점을 잡아 죽이기, 정상적이지 않은 PK등 여러 부정적인 의미가 하나로 응축되어 있다. 이를 두고 몇몇 게이머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PvP서버에서 그런 행위는 전혀 불법적이지 않다', '시스템적으로 허용되어 있기 때문에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기자는 그들 논쟁의 핵심에서 잠시 벗어나 왜 이런 논쟁이 출발하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무엇이 그들을 PvP서버로 몰리게 하였고, 무엇이 그들에게 이곳 저곳에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게 하는 것일까?
많은 한국 게이머들은 은연중에 PK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자신은 PK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자신은 언제나 선(善)이며 악(惡)이 되는 인물들에게는 확실한 응징을 하여야한다라는 자기 최면에 빠져있다. 그러나 실제로 PK라는 것을 대할 때마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는 마치 마약과도 같이 금기시되는 것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그것이 주는 말초적인 짜릿함이 교차한다. 이러한 양면성은 그동안 우리 온라인 게임들이 보여온 것들의 최종적인 모습이다.
우리 게임들이 보여준 PK의 모습은 어떠하였는가? 어떤 게임에서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본성을 그 밑바닥까지 여과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게임의 설정상 PK를 허용하는 듯 허용하지 않는 듯 얼버무리며 총을 쥐어주고는 쏘지말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쏘지 말라는 총을 쥐어든 게이머들은 PK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며 스스로 그 총을 쏘아버린 이들에게 총구를 겨누어도 된다는 면죄부를 발급받았다.
먼저 총을 쏘아버린 이들을 겨눈 매카시즘의 광기어린 총구가 빨갛게 달아오를 즈음에는 누가 선(善)인지 누가 악(惡)인지 분간할 수 없다. 서로 뒤엉켜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그 진흙탕 싸움에 뛰어드는 이들은 모두 같은 진흙에 범벅이 되어 구분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가 만든 게임들의 모습이었다.
게임의 주체가 서로 다투게 된다면 그것은 더이상 게임이 아니다
어떤이는 왜 이런 게임들을 만들게 되었는가에 대해 '기획력의 부재를 얼버무리려는 속셈'이라는 혹평을 내린다. 기자도 그 말에 동의한다. 그것은 체육시간에 축구공 몇개 던져두고 '뽈차라'라고 말하는 체육선생과 같은 속셈이다. 운동장안의 학생들은 공 몇개를 두고 서로 볼타툼을 벌인다. 그 가운데 반칙이다 아니다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언제나 내부적인 적을 무찌르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새로운 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풍신수길이 자국내 복잡한 정치상황의 타개를 위해 택한 방법과 게임에 대한 게이머들의 불만을 그들 서로가 싸우게 함으로써 희석하는 방법이 서로 비슷하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는 속은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속아도 좋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 저주스런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면서 우리는 게임에 대한 불만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있었다. 토론장은 양치기소년의 놀이터였고 왜 우리가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물음조차 파묻혀버린채,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으르렁거리는 장소로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이것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수많은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은 PK라는 단어에 대해 이중적인 반응을 보인다. 무의식적으로 금기시하는 행동이 가진 양면적인 쾌락의 충동에 우리들은 유혹당한다. 왜 그런 것인지도 모른 채로. 이는 지금 와우의 PvP 서버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PK에 대한 그릇된 환상에 이끌려온 게이머들은 이곳에서도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선악을 구분지으며 자신이 선이라는 것을 주장함과 동시에 미비한 시스템에 대한 불만보다는 그들 스스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매카시즘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수많은 논리로 치장한 우리 게이머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어온 것일까? 지금도 수많은 게임속에는 진흙탕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온라이프21 객원기자 '황성철']
가끔 삐딱하게 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