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1 : 상당히 스크롤의 압박이 심합니다. 길어서 패스하실 분은 살포시 뒤로가기를...
주의2 : 편의상 어체를 평어로 하였으니 이에 대해서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Role Playing Game.
우리나라 말로 직역하자면 "역할수행놀이" 정도가 되겠고, 완역하자면 "연극놀이" 정도가 되겠다.
RPG는 우리가 게임을 접함에 있어서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장르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가장
사랑받는 장르이기도 하다.
RPG는 TRPG (Table-talk Role Playing Game) 에서 유래되어 CRPG (Computer-Console
Role Playing Game) 로 이어져와서 지금은 CRPG를 통칭해서 RPG라고 정의되고 있다. 문제는
T -> C -> MMO 로 플렛폼(-_-)이 변형되고 시대의 요구사항이 변함에 따라서 RPG로서의
모습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로도스 전기"는 만화, 애니매이션, 게임, 소설 등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로도스 전기는 TRPG의 ※리플레이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RPG 에서 중요한 제일의 요소는 바로 이야기라는 것이다.
(※ 리플레이 - TRPG를 진행하면서 플레이어들이 나눈 대화와 행동들을 기록한 것.)
역할수행게임인데 이야기가 무슨 상관인가?
사실 RPG에 있어서 Role-Playing 은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무슨 말이냐면 RPG에 있어서
역할은 이야기를 이끌어갈 혹은 풀어나갈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다. 연극, 뮤지컬, 영화에서
배우의 의미로서 사용되는 것이다. 연극과 뮤지컬, 영화에서 이야기를 배제하고 무대를 완성
할 수 있을까.
TRPG 에 있어서도 역할을 맡은 PC (Player Character) 가 전사 역할을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건을 해결했느냐가 중요하다. 전사역을 했다는 것은 단지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배우로서의 모습을 뿐이다. 그래서 인지 TRPG를 함에 있어서 캐릭터를 만들고나서
하는 가장 먼서 하는 것이 캐릭터에 대한 설정이다. 이 설정은 캐릭터가 왜 전사가 되었는가,
왜 여행을 하는가, 어떤 배경(가족이나 직업 등에 대한)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것들이다.
이러한 설정은 그 캐릭터의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 하여금 동기부여와 목적을 갖게 하기 때문
이다.
이야기에는 플롯이라는 것이 있다. 이 플롯은 간단히 말하자는 일종의 패턴,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야기가 구성되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간단히 예를 들면,
01 - 주인공은 어릴적에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서 고아원에서 살아왔다.
02 - 그 고아원의 원장은 주인공에게 잘 대해주었다.
03 - 원장은 어느날 산적들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04 - 원장의 복수를 위해서 주인공이 나선다.
05 - 알고보니 산적들은 허수아비였고 진짜 악당은 따로 있었다.
06 - 그 악당을 쓰러트려야 진짜 복수라고 생각하며 여행을 떠난다.
07 - 여행을 떠나는데 같이 고아원에서 지낸 친구녀석이 같이 따라나선다.
08 - ....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요약해서 나타낼 수 있는 것이며, 이 플롯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 잘
짜여진 플롯이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에 있어서 플롯은 간단하게도 나타낼 수 있고 복잡하게도
나타낼 수 있지만, 중요하게 꼭 들어가야할 요소들이 있다.
1) 등장인물에 대한 설정 -> 고아이면 왜 고아인가, 성격이 포악하면 왜 그런가.
2) 시대, 배경에 대한 설정 -> 등장인물이 살아가는 시대는 어떠한가, 왜 그런 모습인가.
3) 등장인물이 행동하는 이유 -> 이야기의 정당성 부여. 복수, 세계정복 따위의 이유들.
이런 플롯이 중요한 이유는 역할을 맡은 배우가 그 배역을 이해하고 그에 대해서 연기를 할 수
있는 감정이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RPG에 있어서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역할을 맡은
PC가 자신의 배역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RPG에 있어서 '자유도'란 무엇인가?
'울티마 온라인' 이래로 RPG에 있어서 '자유도'라는 단어와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
'자유도'는 최근에도 한 게임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문제는 '자유도'에
대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유'가 우리가 도덕규범적으로 언급하는 그 자유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면서 바라는 요소인 자유도, 그 모습은 어떤 것인가? NPC를 죽일 수도,
납치할 수도 있으며 집을 가질 수도 있고 꾸밀 수 있으며 도둑질도 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을
일컬어 '자유도'라고 하는 것인가?
답은 '아니오'다. 그러한 요소들은 RPG에 있어서 자유가 아닌, 액션 혹은 어드벤처에서나 추구
될 수 있는 자유다.
TRPG에는 주사위로 모든 것들 결정하였다. 자유가 없어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PC는 룰이
허락하는 범위 이내에서 어떤 행동을 해도 무방하다. 주사위는 단지 그에 따른 대가를 치룰
것에 대한 가부와 그 가치를 판단내리는 것이다. 함정이 있다면 힘으로 부셔도 무방하다. 다만
그에 따른 확률을 주사위로 성공의 가부를 결정하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RPG에 있어서 자유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 글의 주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혹은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PC에게 주어지는 권한인 것이다.
TRPG에서는 던전마스터가 CRPG에서는 시스템이 관장하는 세계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PC는
주어진 자격은 매우 한정될 수 밖에 없다.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배역에 대한 연기일 뿐
이다.
그래서 그 자유란 것은 어떻게 연기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즉, 어떤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로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이다.
- 모 공화국의 공주가 납치 당했다. 구하겠는가?
A : 아니, 난 그럴 시간이 없어.
B : 그래, 누가 납치한건데? 왜 납치된거야? 들어보고 결정하지.
C : 공주는 이쁜가? 보상은 얼마나?
이렇게 볼 수 있다. 배역은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는 주역이다. 이야기가 어떻게 완성되느냐는
전적으로 배역이 연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적과 싸우는데 돌맹이를 던지건, 자신의
집을 갖건, 남의 집을 불태우건, 그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데 있어서 부수적인 연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배역이 어떤 상황을 연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MMORPG, 그 모습은?
TRPG에서 CRPG로 이전되면서 많을 부분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TRPG의 룰은 생각보다
그 양과 규모가 대단한데, 예로 유명한 D&D룰의 첫번째 개정판만 하더라도 3개로 그 구성을
나누어 놓았으며(초-중급, 고급, 달인) 그 내용에는 우리가 단순히 알고 있는 전투에 관련된
것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무기에 따른 마스터리(숙련)에 관련된 것도
있으며 지역, 성을 경영하기 위한 룰도 존재하며 솔로, 파티 전투를 벗어나 대규모 집단전투
(영지전, 국가전)를 위한 룰도 구비되어 있을 정도로 상당히 복잡하고 세세함을 갖추고 있다.
우스게 소리지만 +1, +2 등의 강화(?) 아이템도 있다. (응?)
이러한 룰을 CRPG에 모두 이식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물론 네버윈터나이츠(NWN)의
경우 처럼 잘 구현한 경우도 있지만 직접하는 만큼의 룰이 구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CRPG에서도 중요하게 계승된 것은 바로 이야기라는 점이다.
CRPG로 영역이 확산되고 바뀌면서 물론 RPG 자체로서도 변형이 되었지만 중요한 점은 바로
이야기를 주축으로 배역들이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는 이전과 다를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MMO로 넘어오면서 많이 바뀌게 되었다.
우선 TRPG나 CRPG에서 PC는 던전마스터가, 시스템이 PC로 하여금 배역을 연기할 것에 대해
동기를 부여해 주며, 정당성을 갖도록 해준다. 쉽게 말하자면 강제적인 설정이 가해져 있다는
것으로 예를 들자면, PC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가족이 살해당해서 PC가 그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을 갖게 만들어 논다는 것이다. 물론 CRPG에 한해서 이며
간혹 TRPG에서도 이러한 강제적 설정이 가해지기도 한다.
그러한 동기부여나 정당성을 갖게 만드는 것은 MMORPG로 오면서 상당부분 약해지게 된다.
이는 MMO가 추구하는 방식과 기존의 RPG에서 부딪혀서 생기는 괴리인데, MMO는 일단 PC로
하여금 자유를 추구하게 만든다. 게임의 배경이 만들어져 있으며 PC가 연극할 무대도 준비는
되어 있지만 PC로 하여금 연기를 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PC는 그냥 몬스터만 주구장창 잡는 다는 설정으로 놀아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괴리가
불러온 패단은 우리가 지금 접하고 있는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같은 모습이고 최근에 프리오픈을 했던 '프리스톤테일2'가 쓴소리를 듣는 이유기도 하다.
퀘스트가 그에 대한 해답인가?
이러한 쓴소리는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 부터 이에 대해서 언급이 되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지 MMO에서도 그에 대해서 대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른 모습
으로 나타나지는 못했다.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와우)는 수 많은 퀘스트를 제공하며
단순히 사냥이 아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임 중 하나이다.
(주 : 여기서는 단순히 유명하다는 의미로 와우를 언급한 것이니, 에버퀘스트, 울온, 다옥 등에
대한 언급은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에 대한 벤치마칭인가? 우리나라의 온라인 게임에도 퀘스트에 대한 비중이 차츰 높아졌는데
그것에 대해서 솔직히 많이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퀘스트를 하면 경험치 보상이 많다던가,
더 좋은 아이템을 쉽게 구할 수 있다던가 하는 것을 장점으로 내놓아 PC로 하여금 연기를 하게
만든 것이다.
거기에 한층 더해서, 퀘스트를 안하면 손해를 보도록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주객전도개 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퀘스트에서 보상은 이야기를 잘 만들어낸 그에 대한 보상으로 지급되는
것이지. 그 보상을 바라보고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우는 그퀘스트가 어떤 보상으로
주어질지 알지만 연극되는 배역은 그것을 알지 못하는데, 보상을 보고서 퀘스트를 해야 하며
그것을 수락하지 않음으로 불이익을 얻는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해답은...
컴퓨터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의 게임 시스템을
구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를 인간이 하는 만큼의 던전마스터를 시켜서 완벽에
가까운 D&D룰 혹은 그와 비슷한 TRPG룰을 구현시킬 수는 없 다.
중요한 것은 RPG에서 이야기를 빼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게임을 설정하고
구현함에 있어서 퀘스트는 게임의 배경과 관련이 있어야 하며, PC가 그 퀘스트를 할 때, 단순히
노가다가 아닌 이야기를 풀기위해 만들기 위해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MMO가 커뮤티에 중점을 둔 플렛폼이라고 하더라도 그 본연의 성질 자체를 버릴 수는
없다. 축구를 군대에서 하나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골을 골대 안으로
넣으면 득점이라는 것이고 발로만 공을 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TRPG나 CRPG, MMORPG나
모두 RPG라는 것은 분명하다.
TRPG가 RPG로서의 모습의 정답인가?
지금까지 필자가 TRPG에 빗대어서 비교하고 설명을 하였다고 해서 꼭 TRPG가 RPG로서의
정답인 것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TRPG를 언급한 이유는 RPG의 시초이며 가장 이야기에 많은
중점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TRPG나 CRPG나 MMORPG 모두 게임이다. 게임의 궁극적인 목적은 게임을 하는 사람
으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하는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RPG가 어떤 모습을 가져야 바로
그것이 정답이다라는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장르를 구분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장르는 일정한 틀과 규칙을 갖고 있는
것들을 통칭한 하나의 집합체의 이름의 약속이다. 이건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판타지소설
이다. 무협소설이다. 연애만화냐 소년만화냐 시사만화냐 하는 것도 그렇고 락이냐 R&B냐
하는 것도 다 그런 것이다.
우리가 이왕 RPG라고 부른다면 좀 더 그 형태에 맞는 모습까지 갖춘다면, 비록 게임 그 자체로
재미가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해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아쉬움을 갖는 게이머들까지
만족시켜 줄 수 있지는 않겠는가.
마치며...
어쩌면 별 영양가 없는 글일 수 있다. 하지만 RPG를 좋아하는 한명의 게이머로서 RPG라는
장르로 나오는 게임에 대해서 느끼는 아쉬움은 비단 필자 뿐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획일화되어 있는 국내 RPG 시장에 대한 아쉬움에 쓰는 글이다.
게임은 게임답게. 게임에 무엇을 바라는가. 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도 하나의 여가생활,
취미생활로 생각한다면 게임에 대해서 좀 더 나은 모습을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이 게임을 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모두가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RPG라는
장르로 그 게임에서 그 장르 특유의 재미를 찾는 사람도 있으며, 그러한 장르를 선택한 게임이면,
그에 대해서 그에 합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그 합당한 모습은
바로 '이야기'에 근간을 두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상으로 긴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