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졸이라는 꼬리표가 이렇게 무서운 건지 정녕 몰랐습니다.]
중학교1학년 때 학교를 그만 두었습니다. 자의와 타의가 결합돼 일어난 결과지요.
그 당시에는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제 마음가짐도 좀 문제가 많았습니다.
진짜, 글이나 드라마 소재로 쓰면 대박날 것 같은 흔치 않은 친척들과,(나쁜 쪽입니다.)
별 잡스러운 것들을 보며 자라 보통 그 나이 또래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부정적인 외모(?) 도 한 몫 단단히했구요. 목에 있는 커다란 점도 저에겐 무척이나 싫은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전학을 7번이나 하여서 친구라 부를만한 놈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터졌습니다. 중학교에 올라와 다른 아이보다 힘이 세고 키가 큰 전, 어렸을 때부터 당해왔던 모든 것들을 풀어버렸습니다.
강간, 살인, 성폭행, 빼고는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막나갔죠.
..,예, 양아치였습니다. 그땐,
하튼, 그러다 큰 사고를 치게 되어 소년원이란 곳에 들어가고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그게 뭐 대수랴? 라는 마음가짐 이었습니다. 그 순간 에는요. 하지만, 경찰들 앞에서 무릎을 굽히시고 서럽게 우는 아버지에 등을 보았을 땐, 제 손목에 덩그러니 차여진 은팔찌가 너무도 원망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노예로 키우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할 테니 소년원만은 보내지 말아달라고 서럽게 우시던 아버지, 같은 하늘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조차 불결하게 느껴졌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순간 정신을 차렸습니다. 순간만이요.
그렇게 소년원을 들어가고 재판을 받고 운 좋게 1,2호를 받고 나와 나름 성실하게 보호관찰을 끝냈습니다. 한 번도 안 빠지고요.
그리고, 어머니 댁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시는 어머니,
어렸을 적부터 단란주점이란 곳에서 일을 하시는 어머니를 많이 보아서 그런 어머니가 너무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원에 있을 적 면회를 오셔 저를 보며 눈물부터 쏟아내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그저 안쓰럽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까지는 어머니 보호아래 잘았습니다. 16섯 살이 되던 해 직업훈련소를 들어가 1년간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땄지요. 그리고 17살 때부터 사회에 뛰어들었습니다.
....많이 발악했습니다. 많이 노력했습니다. 저는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방끈이 짧기 때문에 남들 보다 두배 세배는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과정은 좋게 시작을 하여도 결과는 매번 시원찮았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나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죠.
그러다, 19살 때 게임방 알바를 해서 어느 정도 융통성이란 걸 기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보다 어렸을때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거기서 그만두고 20살 때 카센타 보조로 일을 하게 되었고, 그해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평택에 있는 회사(공장)에 들어가 7개월간 열심히 일했습니다. 일을 함에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성실하다. 착하다. 그렇게만 해라. 라는 말은 참 많이 들었습니다.
거기서 뼈를 묻을까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거기서 만들어내는 물질이 인간에게는 해로운 것이라고 하더군요. 몇몇 피부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부작용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 몇몇 사람이 바로 저구요. 네. 결국 부작용이 일어나 일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다시 어머니 댁으로 오게 되었죠.
그 리고, 물류센터의 이력서를 내고,( 지금까지 취직을 한 대는 모두 다른 누군가가 소개 시켜준 자리입니다. 여기도 마찬가지구요.) 면접을 보고 합격을 받았습니다.
...신체검사를 보고 결과를 가져오라길래 병원으로 갔죠.
....의외였습니다. 빈혈이 심하고 간이 안 좋다고 정밀검사를 받아 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검사를 받아보니 임파선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군요.
큰 병원에 가서 입원을 하고 각종 검사를 해본 결과, 병명은 결핵이었습니다.
폐결핵, 장결핵, 임파선 결핵, 다른 결핵 환자보다 지독하게 걸렸다고 의사가 말하더군요.
당연히 치료를 위해서 일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리고, 지금까지 치료를 받구 있구요.
다행히 지금은 많이 호전된 상태라 일을 해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의사가.
그전에 결핵이란 병명을 듣고 한 달간 물류센터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약값과 치료비를 벌어보자는 심산에서요. 하지만, 염증이 심해지고 몸이 제 몸 같지가 않더군요. 특히 3교대 근무라 하루하루가 무슨 전쟁터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만 두었구요.
지금, 다시 게임방이나 다른 알바를 하려 준비하고 있는데.
제 나이가 벌써21살입니다.
좋은데 취직하고 싶고 가족에게 보탬이 되고 싶고 당당해 지고 싶지만,
마음 한켠에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이름에 무게가 저를 짓누르고만 있습니다.
답답해서 올리는 글입니다.
제 가슴속에 묻어 두고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입니다.
친구도 없어, 언제나 혼자 고민하고 혼자 해결했던 저인지라...
너무나 답답해 이렇게 글을 올려봅니다. 뭘 어떻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저 답답한 이의 푸념이거니..하구 봐주시고요.
지금은, 타임머신이란 것이 있으면 그저 중학교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검정고시를 보려 해도 머리가 나빠 학원을 등록해야 하는데 집안 사정이..넉넉치 못합니다.
그래서 혼자 해결하려 하는데..이게 만만치 않는군요.
...휴..
답답하네요. 정말.
먼 훈날을 생각하시면 쫒기듯 살아가도 목표를 향해서 달리는 중이라는 생각에
힘든 것을 쉽게 잊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력은 중요하기에
뒤늦은 공부라 생각지 마시고
검정 고시 뒤에 대학 진학까지는
바라보고 공부 하시기 바랍니다...
우선은 건강 회복부터 신경 쓰심이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