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성장률을 7%로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공약은 ‘공약’(空約)이 돼 버렸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4.3%에 그쳤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올해 초 “대선 후보 시절 7%의 성장률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은 이회창 후보가 6%를 제시해 더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며 “이는 실수였다”고 시인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보니 성장률 7%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경제를 아는 어떤 대통령도 5%를 훌쩍 넘기는 성장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선 승리를 위해 7%의 높은 성장률을 제시했지만 실제 경제운용을 해보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노대통령의 ‘솔직한 고백’이다.

정부와 국책·민간 경제연구기관이 내놓은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는 4.9% 안팎이다. 예년과 달리 국내 경기가 뚜렷한 상승 기조를 보이고 있는 데도 연간 성장률 전망치는 5%를 밑돌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정동영·문국현 후보 등 대선 후보들이 제시한 향후 5년간 경제성장률은 6~8% 수준이다. 이후보가 ‘대한민국 7·4·7’ 공약을 통해 성장률을 연평균 7%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고, 정후보는 6%, 문후보는 8%의 성장률을 제시했다.

그러나 대선 후보들이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성장률 달성을 앞다퉈 공약으로 제시한 것은 지나친 ‘성장 지상주의’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왜 ‘성장’ 외치나

대선 후보들이 연 6~8%의 높은 성장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참여정부의 이른바 ‘분배를 통한 성장론’에 대한 차별화 전략이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올해 대선 쟁점이 ‘경제 살리기’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대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에 ‘성장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세력이 힘을 얻고 있는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소득 양극화, 질 낮은 일자리와 빈곤층의 증가, 높은 청년 실업률 등은 국민들로 하여금 ‘고성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했고, 이를 각 정당 대선 캠프에서 ‘성장 이데올로기’를 증폭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대선 후보들의 ‘분배를 통한 성장론’도 한꺼풀 벗겨보면 실체는 ‘성장 지상주의’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성장을 통한 분배는 지금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낮았을 때도 나왔던 얘기”라며 “현재 대선 국면에서 성장론을 강조하는 세력은 특정 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차기 정부의 정책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들이 제시한 대로 성장률을 6~8%로 끌어올릴 경우 물가를 자극하거나 분배 구조를 왜곡시키는 등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무리한 경기부양책을 동원하면) 성장률 6%는 ‘터치(touch) 가능’, 7%는 ‘희망’, 8%는 ‘가능하지 않은 수치’로 본다”고 말했다. 임경묵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도 “경제성장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대선 후보들이 제시한 성장률 전망치는 우리 경제의 부작용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 공약 신뢰 주나

대선 후보들은 높은 성장률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대안 제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 ‘규제 완화’ ‘중소기업 육성’ ‘일자리 창출’ 등 구체성이 떨어지는 공약만 있을 뿐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할 수 있는 성장동력 확보 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규제완화를 통한 기업들의 투자 확대보다는 인적자원의 질을 높이는 투자를 통한 성장 잠재력 확충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임경묵 KDI 연구위원은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노동력의 효율적 배분을 통한 경제체질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경제공약은 일관성과 신뢰성 측면에서 미흡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이명박 후보의 공약 내용을 보면 감세,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성 등과 같은 영미식 모델과 기업 경영권 보호, 금산 분리 완화 등과 같은 유럽식 모델이 혼재돼 있다”며 “소수 재벌의 기득권 보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제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또 “정동영 후보의 경제분야 공약은 참여정부의 정책 기조와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등 정체성이 극히 모호하다”고 밝혔다.

○ 부작용은 뭔가

성장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두게 되면 양극화 해소나 비정규직 해결, 재벌개혁 등 핵심적인 경제 현안을 비켜갈 수밖에 없다. 김상조 교수는 “경제가 성장해도 시장구조가 왜곡되면 성장의 과실이 대기업과 일부 부유층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고, 중소기업 육성이나 비정규직 차별 문제는 해결할 수 없게 된다”며 “성장 제일주의 담론에 대한 대항담론을 만들어내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는 “과거에는 고도 성장의 과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저소득층에게까지 전파되는 이른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효과’가 나타났지만 지금은 세계화와 정보화 진전 등으로 성장의 과실이 일부 고소득 계층에게만 돌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선 후보들이 성장에 치우친 공약만을 내세우면 집권 후에도 ‘양적 성장론’에만 치우칠 수밖에 없게 되고, 성장의 과실이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만 돌아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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