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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의 수난을 담은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1966년 석가탑 2층 탑신석 사리공에서 시루떡처럼 뭉친 종이뭉치로 발견된 '묵서지편'(墨書紙片)이 마침내 보존처리와 판독을 거쳐 지난 25일 공개됐기 때문이다.

묵서지편 전체가 고려 현종(顯宗) 15년 태평(太平) 4년(1024)과 정종(靖宗) 4년 태평 18년(1038)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중수(重修)를 할 무렵의 상황과 과정을 기록한 문서로 밝혀졌고, 이를 통해 신라시대 창건 이후 도굴 시도로 촉발된 1966년의 완전한 해체, 수리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수리ㆍ보수가 없었다는 신화는 붕괴됐다.

석가탑이 중수될 무렵 고려 왕조는 거란족의 요(遼)나라 연호를 채용해 '태평'으로써 해를 매겼으나, 유감스럽게도 이 시절 고려왕조는 태평과는 거리가 멀었다.

건국 이후 멸망에 이르기까지 고려 왕조 500년 역사를 각각 기전체와 편년체로 정리한 방대한 정사(正史)류인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는 석가탑이 중수된 현종-정종 시대를 지진의 엄습으로 공포에 떤 시기로 적고있다.

예컨대 석가탑이 1차로 중수된 1024년 이전 현종 재위 15년간만 해도, 모두 6차례에 이르는 경주 일대 지진 발생기사가 보인다. 이에 의하면 현종 3년 3월 경오(庚午)와 같은 해 12월 정축(丁丑), 4년 2월 임오(壬午)와 같은 해 12월 병술(丙戌), 5년 8월 병자(丙子), 그리고 6년 12월 갑신(甲申)에 각각 지진이 발생했다.

하지만 잇따른 지진이 1차 석가탑 중수 원인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묵서지편에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따라서 석가탑 창건 '285년'만인 1024년에 왜 1차 중수를 하게 되었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반면, 1차 중수 10여 년만에 2차 중수를 하게 된 까닭에 대해서는 지진, 그것도 거푸 덮친 지진이 원인임을 묵서지편은 분명히 기록해 놓고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는 정종 시대에 모두 3차에 걸친 지진이 기록됐다. 그 원년 9월 경주를 비롯한 19개 주를 필두로 이듬해(1036) 6월 무진(戊辰.21일), 그리고 같은 해 8월에 각각 지진이 경주 일대를 엄습했다고 했다.

2차 석가탑 중수 이전에 일어난 이런 지진 기록은 중수기에도 분명히 보인다. 더구나 짧은 기간에 자주 덮쳤기에 이런 현상을 중수기는 '연차'(連次)라고 표현했다. 지진이 연달아 발생했다는 의미다.

더욱 주목을 요하는 대목은 석가탑 2차 중수가 이뤄진 직후인 정종 4년 1월 중순에도 지진이 있었다는 대목이다. 이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는 보이지 않는다.


석가탑 묵서지편 공개

묵서지편 판독에 참가한 고려사 전공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 상황이 매우 생생하게 드러나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고려사 등의 기존 문헌에 등장하는 지진 발생과 그 피해 상황을 학계에서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나, 이번 석가탑 중수기를 보면 이 때의 지진을 고려인들이 얼마나 큰 재앙으로 인식했는지를 여실히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종 4년(1038)에 작성된 중수형지기(重修形止記)를 보면, 그보다 2년 전인 1036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불국사는 불문(佛門) 남쪽 대제(大梯.계단의 일종)의 부속시설과 하불문(下佛門.구체적인 시설은 미상)의 시설, 그리고 여러 행랑 시설 등이 붕괴됐으며, 서변(西邊)의 석탑, 즉, 석가탑은 붕괴 일보 직전에 몰린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석가탑은 붕괴를 막기 위해 임시로 잡목을 버팀목으로 덧대어야 했다는 상황도 중수형지기에 드러난다.

이런 지진의 충격 여파 때문인지, 석가탑은 2차 수리에 곧바로 돌입해야 했음에도, 어찌된 셈인지 불국사측은 임시 버팀목만 받쳐 놓은 채 1년 6개월을 미적거리다가 정종 3년 12월23일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중수에 착수한다.

이 때 사정을 중수형지기는 "나라에서 수리할 뜻이 없으실 뿐더러 또한 전단월(前丹越.승려의 일종)이나 은혜에 보답하려는 의승(義僧)이 없으므로"라고 적었다.

따라서 연이은 지진 피해로 불국사는 자체 재정이 파탄났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불국사와 석가탑의 재앙은 이에서 그치지 않았다.

겨우 2차 중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종 4년 1월 중순 무렵, 또 다시 지진이 발생해 겨우 쌓은 석가탑을 다시금 해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석가탑은 같은 해 2월5일 마침내 지대(地臺), 즉, 기단을 바로잡은 데 이어 이틀 뒤에 석축곽(石築槨.기단 상층)을 조립함으로써 2차 중수를 완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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