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례19살 베트남 신부 넋 위로한 ‘재판부 판결문’
맞아죽기 전날 남편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같아
“한국 사회 야만성에 용서 구하는 심정입니다”



“우리들 안에 숨어 있는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

법원이 베트남 신부를 폭행해 숨지게 한 40대 남성에게 중형을 선고하면서 우리 사회의 미숙함과 야만성에 대한 절절한 자책을 판결문에 담았다.

열아홉 살 후안마이는 2006년 12월 베트남에서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소개받은 장아무개(47)씨와 그날 바로 결혼식을 올리고 지난해 5월부터 한국에서 함께 살았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힘겹게 부부 생활을 하던 후안마이는 결국 결혼 한 달 만인 지난해 6월 짐을 싸들고 집을 나가려다 술에 잔뜩 취한 남편에게 마구 맞아 세상을 떠났다.

장씨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고, 항소심을 맡은 대전고법 형사1부(재판장 김상준)는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후안마이는 사건 전날 남편에게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로 시작되는 긴 편지를 썼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마시는지 알고 싶어요. 당신이 일을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고, 건강은 어떤지 물어보고 싶어요.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당신이 제게 많은 것을 알려주길 바랐지만, 당신은 오히려 제가 당신을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 저는 당신이 맘에 들면 고르고, 싫으면 고르지 않았을 많은 여자들 중 한 명일 뿐이었죠. 하지만 베트남에 돌아가더라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오길 바래요.”

재판부는 후안마이의 편지 내용을 판결문에 담은 뒤 그에 대한 답장처럼 판결문을 써 내려갔다. “피해자는 19살 나이에 서로 이해하고 위해 주는 애틋한 부부 관계를 꿈꾸고 한국에 왔지만, 남편의 배려 부족과 어려운 경제 형편, 언어 문제로 원만한 결혼 생활을 누리지 못했다. … 결국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려고 한 게 장씨가 ‘사기 결혼을 당했다’고 착각하는 계기가 됐다.”

재판부는 “장씨가 베트남 현지에서 졸속으로 아내를 만나는 과정을 보면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 “배우자가 될 사람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도, 알고자 하지도 않은 채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배우자를 선택했다”며 “이는 장씨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 대하는 우리 사회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21세기 경제대국의 허울 속에 갇힌 우리는 19살 후안마이의 작은 소망도 지켜 줄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며 “이 사건이 장씨에 대한 징벌만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의 베트남 가족들과 연락을 하려 했으나 결혼정보업체나 관계 당국 모두 후안마이 가족들의 소재를 확인하지 못했다. 김상준 부장판사는 “한국 사회의 야만성에 대해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구하는 심정이었다”며 “피해자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 채 판결을 내리게 된 게 못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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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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