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하기에 가장 중요했던 기준: 레벨 그리고 지존
과거 RPG에서 레벨이란 명예의 상징이었다. 고렙은 항상 저렙의 부러움을 샀으며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누구나 고렙이 되고자 어렵고 힘들지만 열심히 몹을 잡아 가며 레벨 업에 필요한 엄청난 경험치들을 꾸역꾸역 쌓아 가곤 했다. 오로지 고렙에 대한 일념하나로 더 나아가서는 지존이 되고자 하는 꿈을 품으면서 말이다.
수단이 되어야 할 레벨이 목적이 되어 버린...
그래서 레벨 자체가 게임에서 하나의 중요한 컨텐츠가 된다. 레벨에 의한 명예욕에 휩싸인 유저들이 너도 나도 고렙 경쟁을 하다 보니 해당 게임은 오로지 레벨에 의한, 레벨을 위한 게임 진행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진다. 그러면서 고레벨 몬스터가 필요해지고 고레벨 사냥터가 필요해질 뿐이었다. 이는 그 외의 컨텐츠에 대해선 무관심을 초래하게 되고 결국 정체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버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꾸준한 업데이트를 통해 점차 완성도가 높아지고 게임성을 갖춰야 할 게임이 단순히 레벨 게임으로 전락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수단이 되어야 할 레벨이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현상이다.
획일화 현상으로 인한 폐해
결국 이 같은 게임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똑같은 부류의 게임들만 보이는 획일화 현상이 생기게 된다. 게임 배경이나 스토리는 분명히 틀린데 게임을 하다 보면 결국엔 거기서 거기인 게임들인 것이다. 어떤 게임이든 레벨에 의한 천편일률적인 진행을 하는데 유저의 입장에선 크게 달라보일 것이 있겠는가?
이처럼 과거 한국 온라인 게임계는 이러한 획일화 현상으로 인해 생겨난 정체된 완성도와 게임성을 갖춘 게임들이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레벨 중심의 사고를 버리지 못한 많은 유저들에 의해, 좋은 게임이라고 평가를 받던 게임들이 조용히 사라져 갔던 것도 사실이다. 겉으로는 또는 양적으로는 많은 유저들이 생기고 많은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게임 시장의 규모가 점점 팽창하던 때이지만 속으로는 또는 질적으로는 뭔가가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했던 암흑기이다.
결국 세계적 흐름에 뒤쳐진 한국 게임과 새로운 강자 WOW의 등장
내가 보기엔 겉과 속이 다른 이 암흑기 아닌 암흑기가 한국이 온라인게임에 대해선 비교적 오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게임이 변변치 못한 것에 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십수년의 나름 긴 역사의 시간동안 안방 시장에 안주하고 있을 때 게임성과 완성도를 갖고 등장한 WOW라는 게임에 뒤통수를 맞고 "아차!" 하며 온라인 게임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을 때도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확인사살로 더욱 우리를 충격에 몰아 넣는 건 국내 온라인 게임계 최고의 스테디셀러라고 불리는 리니지1+리니지2와 WOW 전세계 매출액의 차이다.
*2007년 전세계 게임 매출액(한국게임산업진흥원 자료 참조)
리니지1+리니지2 | WOW |
약 2200억원 (국내 매출이 약70%이상) |
약 1조원 |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인기있다고 하는 게임들 둘 합쳐도 WOW한테 상대가 되질 않는다. 안방 호랑이였다는 얘기가 결코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반증하고 있다. 이는 우리만의 기준에 맞추어 단순히 레벨업 같은 숫자놀이에 빠져 똑같은 게임들만 만들어 내다가 결국 세계적 기준에 뒤쳐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처럼 게임을 산업이라는 기준으로 좁혀 봤을 때도 과연 한국 게임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되는지를 구체적이진 않지만 의미심장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