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이잉~'
'띠릭... 띠로링~♬ 띠~~~~~~~~~~~~~~~~'
1996년 겨울.
아빠가 사준 8비트 게임기의 시대가 저물고 졸업선물로 컴퓨터를 받았다. 이 게 웬떡이냐 싶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뛸 듯이 좋았다. 마리오카트 하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내게 컴퓨터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친구녀석때문에 알게된 넷스케이프... 그 금단의 영역.
엄마는 수화기를 들다말고
"야 이노무 자슥아 너 또 컴퓨터질이냐~!!"
하고 야단을 치시며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띠~~~띠~~~소리에 얼굴을 찌푸리신다.
그랬다. 당시엔 전용선이니 광랜이니 하는 것은 개한테 끓여주는 죽인가 싶었던 그 때,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같은, 지금의 하나로, 엑스피드, 한국통신보다 훨씬 떠받들어지는 인터넷 회사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종량제 28k모뎀시절 되겠다. 분당 접속이용료가 700 전화시리즈와 맞먹던 그 시절, 온라인게임의 단군할아버지, '바람의 나라' 좀 할라치면 몇 십만원이 우습게 나오던 시절이었다.
당시엔 그래픽이 아닌 텍스트가 주가되는 머드(MUD)게임이 활발해지는 시기였는데 당시 가드로스군이 전화비 비싼 줄 모르고 겁도 없이 즐겼던 게임이 가디우스, 마법의 대륙 되시겠다.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고 있던 가드로스군에게 당시의 텍스트 머드게임은 지금의 리니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중독성을 낳았으니 정말 심하긴 심했다. 신문기사에 나오는 '철없는 초등학생 인터넷 이용료로 수백만원 나와'가 남의 집 얘기가 아니라는 건 당시 집 마당 구석구석 쌓인 먼지가 소독차에서 뿜어내는 연기만큼 뿌얘질정도로 매타작을 당한 당시 상황이 말해주고 있다.
1999년 밀레니엄을 앞두고 모두가 들떠서 2000년 새해를 맞이하던 20세기의 마지막날 밤. 가드로스군은 난생처음 알바라는 것을, 그 것도 한 겨울에 신문돌리기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DDR과 PUMP, 비트매니아로 현란한 발놀림 손놀림 보여주면 동네 여중생들 껌뻑넘어갔던 그 시절에 필자와 함께 신문을 돌리는 일당 3인조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후달스패밀리 되시겠다. 한 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경계점에서 가드로스군은 신문돌리는 것을 마치고 친구녀석들과 새벽 5시에 이제 막 동네에 들어서기 시작한 피씨방을 찾아가서 '리니지'라는 것을 접했다.
본토가 막 업데이트 됐었던 그 시절, 힘기사 만든다고 str 18 맞추기위해 무던히도 주사위를 돌리던 기억이 선하다. 말섬에서 1:1로 셀로브를 잡으면 짱먹던 시절이었으니 호랑이 담배피는 시절보다 아련하지 않은가...
그렇게 맞이한 21세기. 밀레니엄이 다가오면서 불거져나왔던 지구종말론과 세계 3차대전 등은 거짓말처럼 지워져버리고 우리에게 다가온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PC게임과 PC게임 시장을 파고드는 머그(MUG)게임의 태동이었다. 영웅전설, 코룸, 포가튼사가, 킹스퀘스트 시리즈, 디아블로, 아마란스3D, 창세기전, 파랜드택틱스 등등 주옥같은 명작들이 쏟아져 나오며 손노리와 가람과 바람(지금의 그리곤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소프트맥스 등 국내 굴지의 PC게임 회사들이 명성을 떨쳐나갔다.
한편 온라인게임으로는 MUD에서 한단계 진화된 본격적인 2D게임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마법의대륙을 이은 마법의 대륙2(지금은 신 마법의 대륙으로 3번째 부활을 알리고 있는 15년 역사의 살아있는 전설게임중 하나다.), 다시하고 싶은 온라인게임 순위에 빠지지 않는 '마지막왕국', '이클립스', 필자의 닉네임이 된 '가드로스', 최초의 3D형태를 시도한 레가시(Legacy), 등등 현재는 살아남아 있지 않지만 많은 이들에게 추억이 되버린 그러한 게임들이 PC게임이 점령하고 있는 게임시장을 서서히 잠식해들어가기 시작했다.
2000년, 인터넷을 이용하는 유저들에게 가장 큰 사건은 역시 전용선의 탄생이 되시겠다. 몇 십만원씩 전화비 물려가며 부모님의 매타작을 피할 수 없었던 악몽과 이별할 수 있는 최고의 수혜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일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물론 공부를 도외시하고 컴퓨터게임만 해대는 누구는 매타작에서 항상 자유로울수 없었다고 한다 ㅜ.ㅜ).
1~2년 사이에 2D 온라인RPG(당시는 MMO라는 말이 거의 쓰이지 않았던 것 같다.)가 PC시장을 거의 밀어내기 시작하고 몇몇 PC게임의 명가들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는 가운데 RPG가 아닌 새로운 장르의 게임이 급부상하기 시작했으니 실시간전략(RTS)의 영원한 최강자 '스타크래프트', 1인칭슈팅게임(FPS)의 아버지인 '레인보우식스', 시험끝나면 친구들과 집으로 달려가 비번걸어놓고 함께즐겼던 '포트리스' 등이 바로 그 것이었다(오디션과 같은 댄스장르의 게임은 오락실에서 먼저 선을 보였다 - 아마 버스트무브라는 게임이었을거다).
2002년은 한*일월드컵의 해이기도 하지만 3D MMORPG가 본격적으로 시장형성을 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물론 2003년에 리니지2가 3D로 서비스를 하면서 NC소프트가 막강한 온라인게임회사로 자리잡긴 했지만 어쨌는 그렇게 3D MMORPG의 시대가 왔다. 시대의 주류가 변화하는 시간은 점점 빨라지고 그런 시류에 편승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한 채 도태된 게임들은 추억만 아스라이 남긴채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났다.
엘리멘탈사가, 엘카르디안, 애플파이, 블레오, 판타지포유, 레인가드, 에스피리드, 그리고 3D에서 엄청난 호응을 보이던 릴온라인과 샤이닝로어의 서비스중지...
정말로 아쉽고 할말 많은 게임들이다. 물론 가드로스 군외에도 위에 열거한 게임들에 대해 논하라면 3일밤낮을 새면서 얘기해도 시간이 모자랄 많은 추억을 갖고 계신분들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무엇보다 가드로스 군에게 안타까웠던 게임을 하나 뽑아보라면 역시나 PC게임을 고집하던 소프트맥스가 미친 척(당시 PC게임 매니아들과 일부 열혈 소프트맥스 팬들은 소프트맥스의 온라인게임 개발과 관련하여 정신줄 놓은게 아니냐는 비관론적인 의견을 지배적으로 피력했다.)하고 내놓았으나 뜻밖의 히트를 기록하며 RPG와 FPS가 주도하는 온라인게임의 시장에서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커뮤니티 웹브라우져 채팅게임 4Leaf 되시겠다. 한참 뒤에 나온 '주사위의 잔영'의 중독성은 둘째 치고라도 스토리텔링이라는 멋지고 아름다운 드라마틱 MMORPG인 테일즈위버의 최초 배경이 된 곳이 바로 4Leaf의 주무대 아노라마드 대륙이다. 각 계절별로 존재하는 채팅존과 GP(포립의 게임머니)를 모으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마음 껏 독수리 타법으로 쳐댔던 '와글와글 스피치'를 할 수 있는 공간, 운영자와 만날수 있는 공간 등등 10분인가 1시간접속해야 1GP주던 그 돈을 모으기 위해 무수히 많은 잠수방과 기사단을 앞세운 각종 채팅방 들이 난무했으니 가드로스군도 명당자리에 집을 짓기위해 새빨개진 눈 부릅뜨고 클릭 버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4Leaf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윈엠프의 급속한 보급과 이로인한 음악방송의 유행화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채팅의 한계를 보완하면서 상승효과를 낼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4Leaf에서 음악방송으로 인기를 날리던 BJ이는 많게는 5호점이상의 체인점(?)이 세워질 만큼 음악방송이 주는 재미 또한 매우 컸다. 그리고 음악방송이 살짝 시들해질쯤... 주사위의 잔영은 또 한번의 폭풍을 불러일으키며 재미와 중독성이라는 매력만점의 온라인보드게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극 초창기 살라딘-세라자드-데미안 조합은 부의 상징이었으며 솔져로 마장기를 이기는 전설이 만들어지는 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던 공간이었다.
긴 이야기의 터널을 지나 현재로 돌아와보자. 풍요 속의 빈곤. 딱 지금의 시대만큼 이 말이 잘 맞아떨어지는 시절도 없을 듯 하다. 온라인게임은 한 달에 몇 개, 많으면 몇 십개도 쏟아져 나오는 이 때에 게임웹진을 돌아다니다보면 게임불감증에 관한 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006년 BIG3라 불리웠던 아크로드, 썬(SUN), 제라의 흥행참패가 현 상황에 대한 반증이다.
그라나도에스파다의 높았던 기대치와 흥행부진(지금은 많이 좋아진 듯 하다). 사기라고 까지 불리웠던 라그나로크2의 최악의 흥행참패(게임개발비의 대부분을 OST에 쏟아부은게 아니냐는 비아냥과 함께 1년이상 정식서비스에 대한 엄두를 내지못하고 있다.)로 이어지는 국내온라인게임시장의 위기는 AION이 대한민국 온라인게임 최후의 보루라는 말이 나오기에 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어두운 소식가운데에서도 희소식은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개성없고 그래픽만 이쁜 3D온라인게임에 염증을 느낀 유저들의 향수와 2D온라인게임의 매력을 알려주기위해 아쉽게 서비스를 종료했던 추억의 인기 2D게임들이 하나 둘씩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신마법의대륙, 애플파이, 바스티안 리턴즈, 포레스티아(회사단위의 사설서버이긴하지만 현재 정식서비스를 준비중이다), 젠온라인, 판타지포유 등이 바로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거나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중에 애플파이는 후속작 애플파이2의 개발소식까지 전해와 우리를 더욱 기쁘게 하고 있다.
가드로스군은 한때 2D MMORPG의 몰락을 예상한적도 있을만큼 나날이 발달해가는 온라인게임 산업에서 2D MMORPG가 설자리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도 리니지, 바람의 나라, 뮤 등등 특정 인기게임이자 장수게임들만이 업계에서 살아남아 수익을 내고 있다. 하지만 드래곤라자 같이 큰 인기를 끌고있진 않지만 꾸준하게 우리 곁에서 함께 해온 웰메이드 게임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2D MMORPG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온라인게임 서비스가 이윤추구를 위한 사업이고 때문에 자금문제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의욕만 있다고 많은 이들의 추억을 담고 있는 게임들이 평생을 갈 수는 없다) 지금처럼 획일화되고 당장의 이목을 끌기위해 만들어내는 양산형적인 3D MMORPG보다는(지금의 게임들을 보면 마치 인간과 똑같이 생겼지만 감정이 제거된 휴머노이드 - 인간형로봇 - 를 보고 있는 듯 하다.)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고 화려하진 않지만 많은 이들이 즐기면서 행복해질수 있는 진정한 여유와 재미의 미학이 담긴 2D MMORPG이 나와준다면 우리는 언제난 주저없이 로그인 버튼을 누를 준비가 되어있다.
맞죠.. 옛날 그옛날의 재미는 어디로 간건지.. 에휴.. 양산형게임천국에..
그때당시의 그 신비로움과 재미를 가진 게임은 이제 나오기 정녕 힘든 걸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