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의 온라인게임에 우리의 적은 많지 않았다. 강한 몹과 자신, 혹은 자신이 소속된 길드와 적대적인 인물들만이 싸워야할 상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게임은 발전하고, 독특한 시스템이 도입되는가 하면 유저간의 특이한 구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발전에 따른 다양화라고 본다.
그 결과 시작부터 적대적인 성향의 적진영을 두게 되었으며, 편안히 사냥을 하면서도 뒤통수를 조심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는 다소 피곤해보이지만 게임에 긴장감을 더해주고 더욱 재미를 주는 요소로서 작용했다.
그러나 우리의 적이 적진영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등장해온 ‘오토프로그램’이 바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 적이다. 아주 재미있는 점은 이 오토들이 상대진영 소속이라면 오히려 죽여 없앨 수가 있지만, 오히려 우리진영 소속이라면 필드 피케이가 제한된 게임에선 처치 불가능의 장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토는 유저들의 적임과 동시에 게임사들의 처치대상이었고, 그 어떤 방법으로도 완전히 박멸하기가 어려운 막강한 상대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품어왔던 궁금증을 제시해보겠다.
우리는 오토로 인해 다소 이익을 받는 점이 있다. 오히려 오토가 없으면 불편한 점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오토가 과연 절대 악인가?
오토로 인한 득과 실을 저울질하면 과연 어느 쪽이 더욱 중요할 것인가?
지금부터 하는 ‘오토로 인한 득과 실’에 관한 필자의 생각은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오토로 인한 실
1. 사냥터문제
오토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순발력과 컨트롤이 배제된, 그저 초기에 입력된 패턴으로 반응만을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잡기에 까다로운 몹이 있는 곳이라던가, 선공몹이 다수 포진된 맵에 오토는 찾아보기 힘들고, 오토는 잡기 쉬운몹이 배치된 곳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로 인해 일반 유저들은 피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오토가 잡기 쉬운 몹은 물론 일반 사람에게도 잡기 편한 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토들이 그러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면 일반 유저는 그곳에서 사냥을 전혀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토의 사냥터 독점이다.
단순히 오토가 많아서 사냥터에 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토가 드문드문 있더라도 그것은 치명적이다.
오토는 정해진 패턴대로 꾸준히 사냥을 하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애초 프로그램과 대화를 한다는 발상이 우습다.
더 큰 문제는 오토의 스틸이다. 오토도 자신이 선을 친 몹만을 잡는 오토가 있고, 그에 상관하지 않고 모든 몹을 치는 오토가 있지만, 문제는 후자가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대화가 통하지도 않고 꾸준히 사냥을 방해한다고해서 지치거나 짜증을 내는 법도 없는 오토와 경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오토 프로그램 발달로 인한 오토 패턴의 다양화이다. 오토의 발달로 인해 오토의 AI가 굉장히 높아져서 사냥패턴이 일반 유저들과 다를 바가 없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오토끼리 파티를 맺고 사냥을해서 적대진영의 유저가 오토를 피해가는 우스운 사례 조차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 이상 오토를 만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맵은 없어지고 모든 맵이 오토에 잠식당하는 것이다!
2. 일반 유저의 상실감
일반적인 게이머라면 24시간 게임을 지속적으로 할 순 없다. 단기적으로 24시간을 채우자면 채울 순 있겠지만 이렇게 일주일 내내 사냥을 한다던가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오토는 그러한 제약이 없다. 때문에 오토 프로그램을 사용할 시 굉장한 렙업 속도를 보장할 수 있다.
게다가 오토케릭에는 좋은 장비가 필요 없다. 요즘 게임들 추세가 만렙을 정해 놓는게 대부분이고, 만렙으로 가는 도중 거쳐야 하는 비싼 장비들이 오토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토는 꾸준히 사냥을 하기 때문에 모이는 잡템값도 무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반 유저보다 비싼 레어급의 아이템을 득할 확률도 높은 것이다.
필자가 아이온을 할 당시 오토를 일주일 돌리면 인벤에 신석 한 개씩은 들어와있다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한 이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닌 가능성 높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슴에 허탈한 감정을 품었던 기억이다.
이렇게 일반 유저들은 시간을 쪼개서 다소 지겨운 사냥 노가다 끝에 힘겨운 렙업을 하며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나 오토는 그러한 노력도 없고 시간도 훨씬 단축해 렙업을 하여 강해지고, 더 좋은 장비를 착용할 자격이 부여된다는 것은 오토 비사용자로서 분노하게끔 만들기 충분한 것이다!
사실상 오토가 어떻든 나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 상 부당한 방법으로 나의 노력을 우습게 만들어 버리는 그러한 상황에 냉정하게 계산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애초 게임은 유저들의 마음의 안식처이고, 게임 속에선 누구나 맨몸에 아이디만을 가지고 시작해서 본인이 하는 만큼 보상을 받는 구조였다.
게임은 본디 심적인 요소를 위해 하는 것인데, 그 속에서 상실감을 느낀 다는 것은 게임을 하는 이유를 해치는 것이며, 성실히 게임한 자에 대한 배신이라고 할 수도 있다!
※ 오토로 인한 득
1. 아이템 공급으로 인한 시세의 적당한 조정
어떠한 특정한 아이템에 대하여 특정몹만이 그 아이템을 드랍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 그 특정몹이 인기가 없는 몹이여서 사냥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라면 그 아이템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본인이 몸소 구하러 시간을 내야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거기다 그러한 물건이 드랍률마저 엉망이어서 많은 시간을 내야할 경우라면 애초 그 물건이 필요했던 그 상황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경우까지 갈 수도 있다.
위 상황은 일반적인 상황이다.
일반적이라 지칭한 이유는 요즘 오토가 없는 게임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 게임에 오토가 존재하는 한 대부분 아이템들은 공급이 매우 풍부해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저와 같은 상황에서 그리 가치는 없지만 희소성이 없는 아이템을 몸소 구해야하는 그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토가 없다면 필요 이상으로 고가가 될 만한 아이템들은 얼마든지 많다. 그런 아이템들의 상한가 조정을 아이러니하게도 오토 업자들이 해주고 있는 셈이다.
공급의 증가는 공급자들의 가격 경쟁을 만들어내고, 그 틈바구니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다소 손해를 본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우리가 게임에서 아이템의 공급자가 되기보다 소비자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오토에 의한 방대한 아이템의 공급과 시세 조정의 효과는 우리가 게임을 진행함에 있어서 윤활제 역할을 해준다는 것을 결코 부정할 수는 없다.
요즘 게임들이 대부분 갖추고 있는 경매장 시스템을 통하여 필요한 아이템들을 돈만 있으면 언제든 공급 반들 수 있는 것이다.
매물이 없을 수 있다는 걱정 없이 말이다!
2. 저렙 물품의 공급처
맥락은 1번과 같다.
게임이 노후화됨에 따라 결국에 어떤 게임이든 레벨층의 구조는 역피라미드형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저렙유저가 없는 게임의 경우 저렙용 아이템을 창고에 쌓아두고 있지 않는 한 부케를 키우기가 상당히 곤란해진다.
물론 처음 게임을 하던 심정으로 시작하면 좋겠지만 이미 어느 정도 고렙의 케릭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마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힘들게 하고 싶은 마음은 희석 된지 오래일 것이다.
저렙 때 갖고 싶었으나 당시 주머니 사정상 갖지 못했던 저렙용 고급품을 차려입고 초보시절 따위 빠르게 지나갈 수 있는 충분한 돈이 있지만 매물이 없는 것이다.
정말 우스운 상황이다. 저렙용 고급템의 아이템이 결코 고렙용 중급템에 비해 싸지 않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케 키우기를 포기할 수 있으나, 이 역시 오토들이 해결해준다.
어느 게임사건 오토를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곳은 없고, 어느 수준으로 오토를 계속해서 블록을 시키기 마련이다. 때문에 블록을 당한 오토 업자는 새로운 케릭터를 다시 육성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저렙용 아이템이 공급되는 것이다.
결국 부케를 키우는 유저들은 이러한 오토의 순환에 의해 알게 모르게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앞의 1번도 그렇고 오토는 일반 유저들이 구하기 까다로운, 그러나 손쉽게 구할 수는 없는 그런 아이템의 공급처로서 일반 유저들이 게임 하는 시간을 세이브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편의 또한 도모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오토는 분명 증오해 마땅한 존재들이다.
정당히 게임하는 이라면 오토에 대해 저런 이점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무찔러야할 절대악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저런 이점이 없어지는 것은 다소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토는 과연 절대 악인가, 아니면 필요 악인가?
게임을 망가뜨리는 독이죠 오토는. 오토라는걸 생각해서 개발하지 않는이상..
오토라는걸 생각해서 개발한다면 드랍율이나 경험치를 조율해놓은데..
그렇지 못하니까 문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