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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평소의 색을 잃었다. 대신 검은 잿빛으로 변했다. 땅에서 올라오는 악마의 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비구름인지 알 수는 없었다. 혹은 둘 다 일수도 있었다.

대지는 불길에 의해 하늘과 같은 색을 취해갔다. 위도 아래도 모두 검게 물들어갔다. 차이가 있다면 하늘에는 검은 구름 너머에 푸름으로 가득 차 있었고 땅은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둠만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미친 듯이 타오르는 목조 집 사이로 어린아이가 걸어가고 있었다. 눈망울에 물기를 머금은 아이는 아직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었다. 아이는 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의 눈에서 불길이 치솟아 번뜩 번뜩거렸다.

갈색 빛을 가진 것이 환하게 빛을 내며 검게 변하는 것이 아이의 눈에는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가 재밌게 울려 퍼진 것이다. 간혹 들려오는 신음과 비명도 아이에겐 즐거움 그 자체였다.

아이가 검게 변한 숯덩어리를 집어든다. 숲에서 간간이 보이는 붉은 보석 같은 붉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손을 뻗어 불을 잡아보지만 금세 바스러지고 말았다. 거의 다 탄 나무이긴 하나 조금 전까지 활활 타오르던 것이었다. 아이의 손은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면서 살가죽이 녹아내렸다. 나이가 어린것을 떠나서 고통에 겨와야 하건만 여전히 호기심이 가득 찬 얼굴이었다.

아이는 타 버린 손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금 저 나뭇더미 아래 깔린 사람들도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여겼다.

자신은 왜 이상한 소리를 내지 않는지 의문이 생겼지만 금세 풀렸다. 불탄다고 해서 다 악을 지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도 괴성을 지르지 않는 부류라고 생각했다. 사실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게 아니라 못 지르는 것이었다. 이미 불탄 시체이기에. 하지만, 아이는 죽음에 대해 무감각했다. 아니, 감각이 없었다. 죽음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죽음이 너무나도 일상이었기 때문에.

돌아다니는 중에 뾰족한 돌멩이에 발이 찔렸다. 새카만 발에서 붉은 물이 스며 나왔다. 검은색 사이로 비추는 붉은빛은 유독 도드라져보였다. 그것도 잠시 붉은 액체는 금세 검붉은 색으로 변하고 말았다. 발이 다친 사실은 모르는 지 아이는 계속 걸어나갔다. 검붉은 액체가 대지 위로 찍어졌다.

사방이 시끄러운 가운데도 배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났다. 아이는 배가 고팠다. 보이는 것이라곤 시뻘겋게 변한 돌과 불탄 재, 숯이 된 나무들뿐이었다.

아이는 불이 미웠다. 자신이 먹을 것까지 전부 먹어치운 게 이유였다. 불을 향해 손으로 혼내려고 했지만 휘두를 때마다 불은 유연하게 아이의 손길을 피했다. 놀리는 듯한 불의 모습에 아이는 씩씩거렸다. 몇 번 더 손짓을 하다가 ‘너랑 안 놀아’하고 아이답게 뒤로 휙 돌 섰다.

돌아서자 보이는 것은 불에 대부분이 타서 검게 그을린 목각인형이었다. 아이에겐 사람과 닮은 나무인형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인형은 조금씩 움직여 주먹을 아이 눈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 손을 폈는데 재에 뒹굴어 검게 변한 빵 쪼가리가 있었다. 배고 고팠던 아이는 방긋 웃으며 빵을 집었다.

‘와아~!’

아이의 기뻐하는 탄성과 함께 인형은 옆으로 픽하고 쓰러졌다. 아이는 빵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정말 배가 고팠다. 빵을 먹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쓰러진 인형에게 아이는 물었다.

‘더 없어?’

인형이 대답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조금 전처럼 움직이지도 않았다.

‘왜 안 움직여? 배고파?’

재차 물었지만, 대답이 없자 아이는 인형을 안았다. 인형은 따뜻했다. 그리고 포근했다. 그렇게 얼마간 아이는 인형을 껴안고 있었다.

온기가 다 빠지자 인형을 놔뒀다. 아이의 몸은 재 때문에 지저분하게 변했다. 아이의 모습은 불바다에서 노는 사람들과 비슷했다. 몸에 불을 붙이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사람을 보자. 아이는 즐거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기쁜 일이 있으면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어다닌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 아이였다. 불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놀고 싶어서.

Who's 뤼펜

어쩌다 쳐다본 밤하늘 위에는 별이 없었고 달이 없었다.
하늘은 어두컴컴하기만 하고 주변의 네온사인만이 날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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