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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디지털 뉴미디어 사업부 파이리스 게임 기획 권한결

딱히 온라인 게임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흔히들 게이밍 엔터테인먼트를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슬럼프를 ‘게임 불감증’ 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이 게임 불감증으로 고생하는 유저도 상당수 있으리라 보며, 현재도 곳곳의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내 게임 불감증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게임을 찾습니다’ 라는 등의 문구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본인은 소위 말하는 게임 불감증에 고생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스스로가 머릿속에 꽃밭이 펼쳐져 있을 정도로 낙천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재미라고는 한 구석도 없는 게임을 즐거운 마음으로 밤을 새며 플레이할 정도로 겸허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재미있는 게임을 찾는 심안(心眼)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게임을 재미있게 플레이하고 싶은 욕구(재미있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은 욕구와는 다르다)는 있다. 이것은 개발자가 아닌 일개 유저로서의 욕구이며,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개발자로서 생각하는 유저로서의 권리와 의무이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에게는 여러가지 권리가 존재한다. 이 권리가 충족되지 않았을 경우 해당하는 게임에 대한 싫증을 느낄 수 있으며, 이것이 여러 게임에 걸쳐 지속되면 게임 불감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재미있는 게임 그 자체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
2. 그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권리
3. 그 게임이 더 재미있어지기 위한 요소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
4. 그 게임이 재미없어졌을 때, 혹은 본래부터 재미없던 게임을 포기할 권리

1번의 권리는 3번의 권리와도 인접해있다. 그리고 이 권리는 자연스럽게 개발측에 캐치되어 ‘유저들이 요구하는’ 게임이 제작된다. 그러한 기본적인 요구를 잡는 것이 개발측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번의 권리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온라인 게임에 있어서는 안정된 서버와 게임 내 시스템 등, 플레이를 쾌적화할 수 있는 요소일 수 있다. (이외에도 많지만, 그것은 대부분 3번의 권리로 넘어가게 된다)
3번의 권리는 말 그대로, 유저의 건의이다. 추가적인 시스템에 대한 요구, 혹은 2번 권리에서 불만을 갖게 된 각종 요소의 개선에 대한 요구는 유저로서 가질 수 있는 권리이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졌을 때는 보통 업그레이드 패치나, 혹은 차기작에서 적용되는 형태(특히 콘솔게임의 경우)로 나타나게 된다.
4번의 권리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유저는 언제든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중단하고 다른 게임을 찾아 떠날 수 있다. 운영측으로서도, 내국의 모 통신사처럼 떠나가려는 고객 바짓가랑이 붙잡고 질질 끄는 작태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위의 권리들을 종합해 보면, 유저는 왕이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며, 유저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권리를 최대한 활용해서 엔터테인먼트를 영위해야 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권리를 전부 발휘하고 나서도 게임이 재미 없거나, 혹은 전부 발휘하지 못해서 게임에 대한 재미를 상실한 유저는 4번의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자신이 깜빡 잊고 있는(혹은 외면하고 있는) 한 가지를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유저의 의무이다.

1. 그 게임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찾아내 즐겁게 플레이할 의무

이것은 실로 간단한 의무이나, 의외로 부비트랩과도 같은 부분이어서 유저로서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가거나 혹은 피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개발측으로서도 아쉬운 일이다. 기껏 공들여 만들어놓은 함정에 유저가 멋지게 걸려드는 모습을 감상하기 위해 며칠 밤낮을 숨어 기다렸는데도 사람 하나 안 오고 파리만 날리는 것이, 꼭 울온(Ultima Online)의 함정상자와도 같다. (더불어 본인 역시 실제로 겪어보았으며, 상당히 지루하고 아쉬웠다)

라그나로크(Ragnarok)의 미미한(?)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한때 내국과 일본을 통틀어 ‘토끼귀’와 ‘고양이귀’등은 일부 취향층(굳이 말하자면 동인同人 계열)에 있어서 선풍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상당히 성공적인 것으로, 개발측이 의도한 재미가 유저들에게 부합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서버의 유저들이 ‘큰 리본 언제 나오나요?’ 하며 하루가 멀다하고 리퀘스트하던 모습은 개발자의 관점으로 봐도 즐거운 케이스 중의 하나였다.
네이비필드(Navy Field)의 경우 함대전이라는 요소가 개인적인 취향에 맞아서 당시 열을 올리며 플레이했었으며, 유니크 함 한번 잡아보겠다고 제멋대로 숙적으로 삼고 열심히 도전했으나 매번 대파당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그 함을 몰던 유저의 이름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좋은 의미로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웃음)
또한, PC용 온라인 게임이 아닌 콘솔용(PS, PS2) 게임인 아머드코어(Armored Core) 시리즈는 메카 취향의 유저들에게 크게 어필해서, 현재도 자신의 기체에 자작한 엠블렘을 붙이고 배경 스토리까지 설정하는 등 게임 외적인 요소에까지 몰입하는 유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역시 개발측으로나 유저측으로나 극히 바람직한 전개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대부분의 게임에는 특정 취향을 겨냥한 각각의 어필 포인트가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어필 포인트를 지닌 게임을 찾아내는 데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겠지만, 이것은 유저로서 즐겁게 감수해야 할 것이 아닐까. 이것은 유저의 권리와 의무에 앞선, 원초적인 조건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개발자는 자신이 만든 게임을 유저들이 재미있게 즐겨주기를 바랄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재미없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 미칠 정도의 욕구를 가진 개발자는 극히 드물 것이다. (실제로 그런 개발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전면 부정은 할 수 없는 사실을 양해해 주길 바란다) 또한 유저가 가진 여러가지 권리와 더불어 간단하나 가장 큰 단 한가지의 의무를, 유저 스스로가 반드시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의무를 다 하고도 그 게임이 진정 재미없게 느껴진다면, 미련 없이 4번의 권리를 발동하기 바란다. 고래(古來)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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