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2.26 12:07

'관용의 미학'

조회 6485 추천 3 댓글 23
밤늦게 PC방에서 게임삼매경에 빠져있는데 경찰관들이 들어온 모양이다. 뒤에서 갑자기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해서 흠칫 놀랐다. 게임 속 상황이 다급하여 한 손으로 신분증을 꺼내 주면서 다른 손으로는 키보드를 연신 눌러대는 상황이 조금 민망했다. 인적사항을 조회하던 중 한 경찰관이 게임을 보고 아는 척을 한다. '나도 예전에는 게임 많이 했었는데...... 이 건 처음 보네?'. 오, 의외인데라고 생각하며 웃으면서 몇 마디 설명해주었다.

게임이 일반 국민의 생활로 파고듦에 따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게임을 즐기는 이를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국민게임으로 불리우는 몇 몇 게임의 경우는 그것을 모르면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정도다. 가끔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들의 기사에서 보듯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많은 이들이 즐기는 게임에서 자신의 직업이나 학력, 나이는 그다지 중요치 않게 보인다. 사실 그것을 알 필요도 없다. 자신의 연봉이 어떻게 되는지 혹은 직장내에서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말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도 그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알고 싶은 것은 '저 사람은 게임을 잘하나?' 혹은 '레벨은 어느 정도인가' 라는 것이다.

사회에서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면 주머니에는 돈 한 푼 들어있지 않은 '걸인'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모든 것이 서투르고 생소하다. 설명서를 읽어보아도 생소한 낱말 투성이라서 원어로 된 전공서적보다 난해하다. 염치불구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주변의 초보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까?' 라며 갈등을 겪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파티플레이가 많은 요즘의 게임들에서 어느 정도 레벨을 올리고 게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무렵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초보들에게 이것은 어려운 관문 중의 하나이다. 모든 것이 서툰 초보에게 관대한 사람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개중에는 아예 드러내놓고 초보들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많은 국내 게이머들이 스스로 자료를 찾아보는 일에 인색하지만 모른다는 것에 관용을 베푸는 것조차도 인색한 게이머들 또한 많다. 게임 속의 지명이나 NPC의 위치, 혹은 그 곳까지 가는 길을 알지 못해서 무시를 당한 적이 있는가? 실수를 계속하여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파티에서 쫒겨난 적이 있는가? 채팅창에 비교적 쉽지만 초보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질문을 하여도 다들 저마다의 이야기만 나눌 뿐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고 분통 터뜨린 적이 있는가?


너그러울 관(寬)


이러한 초보들의 고난은 비교적 알아야할 것이 많은 해외게임에서 두드러진다. 흔히 뉴비와 올드비로 양분되는 이들 게임의 사용자 계층은 둘 사이의 심각한 단절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신기하게도 초보들 사이에서도 분명히 계층은 존재한다. 누가 조금 더 초보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자신이 조금 덜 초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들이 초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이미 많은 경험을 쌓은 게이머들처럼 행동한다. 또한 일부 올드비들의 경우 해외게이머들의 좋지 않은 점을 그대로 답습하여 그들만의 세계를 건설하는데 여념이 없다. 초보들에게는 'NOOB'이라 부르기를 서슴치 않는 경우도 많다.

비교적 쉬운 국내게임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남들보다 많이 안다고 은근히 으스대는 게이머들에게 짜증이 난 적이 있을 것이다. 잘 모른다고 핀잔을 듣거나 인격을 모독하는 말을 들어본 일도 많을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게임속에서 가진 자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행동하는 모습은 일반적인 사회에서 보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게임에 대해서 많이 안다는 것은 많은 온라인 게임에서 권력처럼 작용한다. 여러 팬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 게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남들보다 비교우위에 서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가 권력의 핵심에 자리하듯 온라인 게임이라는 작은 사회에서도 정보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 정보를 가진 이들이 관용이라는 단어에 인색하다면 게임속의 사회는 각박해지기 마련이다.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한, 그러나 그 실천에 있어서는 전혀 식상하지 않은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은 게임 속에서도 그대로 통하는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온라인 게임 속에서 게이머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는 현실과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는 점이다.

어디에선가 '게임이 남기는 것은 아이템도 아니고 레벨도 아니라 자신을 친구로 등록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본 적 있다. 만약 자신이 아는 것이 많거나 레벨이 높다고 우리들을 무시하거나 으스대는 사람을 본다면 가볍게 '/차단'을 눌러주자. 그 사람의 차단 횟수가 높아질 동안 우리는 '/친구'를 많이 만들어보자. 온라인 게임의 가장 큰 즐거움은 다른 사람과 같이 즐기는 것이니 말이다.



[온라이프21 객원기자 '황성철']
가끔 삐딱하게 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Comment '23'
  • ?
    영길군 2005.02.26 12:40
    하아 ; 공감가는내용입니다.
    정말 뭐 물어보면 자기들하던 얘기계속하시는
    분들도 꽤 있음 ㅠㅠㅠㅠ

    근데, 요즘마비하는데, 마비는 꽤나 매너가
    좋아요 ㅎㅎㅎ
  • ?
    팬텀솔져 2005.02.26 14:39
    황성철 님은 진짜 글 잘 쓰시네;;
    썼다하면 바로 메인으로 오니 -ㅁ-;
    단어 선택도 그렇고 정말 잘 쓰시네요
    그나 저나 뉴비와 올드비가 무슨 뜻이지 -_ㅡ;;
    내 지식의 한계여..Orz..
  • ?
    대통령 2005.02.26 14:40
    문장력 죽이네... ㅎㅎ



  • ?
    케로베로스 2005.02.26 14:41
    마비가 매너가좋다라 ㅡㅡ;;
    그냥 대충 신경쓰여서 말 거는
    경우던데................
    하지만 타게임보단.
  • ?
    이얏호 2005.02.26 15:05
    뉴비 = 초보 올드비 = 고수 울티마 온라인에서 쓰이던 용어로 알고 있음 -_-
  • ?
    라우비스 2005.02.26 20:40
    흐음 대략.......엄청 바쁜상황이 아닐때는 초보들을 위해 조언이나 팁

    정 한마디정도 해줄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하는게 소망.....

    초보들에겐 그 한 마디 문장이 매우 큰 도움이되기에....
  • ?
    №아샤스™ 2005.02.26 21:15
    정말 감동스런 글이군요^-^..
  • ?
    Sprit 2005.02.26 21:23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
    이타치 2005.02.26 21:24
    허허;;; 초보자에게 더욱 잘해주도록 노력해야지
  • ?
    №드윕™ 2005.02.26 21:43
    하아...정말 공감가는 내용 투성이네요. 잘봤습니다. ^^ 많은 게이머들이 이글을 명심한다면 훨씬 좋아지겠지요..
  • ?
    Ghost 2005.02.27 02:11
    후우 그렇군요... 초보들을... 우숩게 보지말아야 겠어요....
    지금까지 있던일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이런일이 없도록 해야겠내요.
  • ?
    Other 2005.02.27 09:43
    음... 역시 현금거래를 없애야 해.... <--- 뭔말이여 -_-
  • ?
    카오스 2005.02.27 10:33
    아... 상당히 공감이 가는 글 이군요...

    여태껏 게임을 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이상은 겪었던 일들... 그냥 넘기거나 가슴속에 묵혀 두었던 작지만 그렇지 않은 헤프닝들을 정말 잘 엮어내셨군요. 음. 저는 그다지 게임을 잘 하진 못 하지만 다른 게이머를 무시하는 사람들.. 저는 그게 친한 친구라도 그냥 넘어 갈 수가 없더군요.. 제가 많이 당해서 그런 것인지.

    초보... 누구든지 고수로 갈려면 거쳐가야 하는 관문과도 같은 '이것' 을 고레벨, 도는 실력자들은 마치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듯, 자신은 아예 그런 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구는 게이머들 정말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만19세 이하 게이머들이 그 대부분이겠지만... 저는 많은 게임을 해오면서 초보도 되어봤고 고수도 되어봤습니다. 어쩌면 저도 초보를 무시하는 면이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모든 게이머들은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모든 세상에는 음과 양이 존제 하듯이 하늘이 있으면 땅도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1등과꼴등이 있듯이 처으과 끝이 분명히 나누어 집니다. 그러나 거의 끝부분에 도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처음일때 모습은 생각도 하지 않고 처음의 초라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조소를 날리죠...

    언제나 자신의 처음 시작할 때 모습을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 마음속 깊이 새겨 자신의 처음 모습을 항상 생각하며 게임이 되었든 무슨일이든 항상 자만감에 빠져선 안될것입니다.
  • ?
    백두산토끼 2005.02.27 11:44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
    메호소리 2005.02.27 11:52
    맞는말이네요.. 자기가 나보다 더 많이 안다고 으스대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나빠지지요... 그렇다고 그런 분들에게만 나쁘게 평가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그렇게 많이 알기 위해서 나보다 많은 노력을 했기에 그런 결과가 있는것입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그렇게 많은 지식을 알고있음을 칭찬해 줄 것이 아니라 많은 지식을 알 때까지의 그 피나는 노력을 우리는 알아주어야 합니다..
  • ?
    뷁을위하여 2005.02.27 19:53
    저도 이 글 보고 많이 느낍니다.


    저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여러 게임을 접하고

    한 게임에 파고드는 성향이 아니라서

    제가 고수 된 경우는 드물거든여

    그래서 초보일때가 가장 생각나고 좀 간다싶으면 고수 직전쯤이죠

    그래서 전 초보들이 질문할때 항상 답변한답니다.

    제가 저런때가 있었나하고요 ^^*

    답변하는게 나름대로 내 지식을 공유해줄수있다는 생각으로

    말하기때문에 재미있답니다.

    모든 게임의 초보여! 슬퍼하지마라! 득템하여 고수되자!

    모든 게임의 고수여! 자만하지마라! 당신들도 초보였을때를

    생각해라.

    이만 리플 마칩니다 ㅎ
  • ?
    비그리고바람 2005.02.27 21:29
    죄송...딴지 걸 생각은 없지만 요지가 먼지 ;;;

    제목으로 보아선 초보자에게 잘해주자? 맞나? ㅡㅡ;

    그건 당연한 말씀이죠...

    딴지걸 생각은 없구요...음 제 생각을 말하자면...

    초보와 저렙은 다르다는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초보의 경우는 거의 없다는...잇다면 아주 잠깐..

    겜 다운 받는동안...가이드 보고...육성법 찾아보고...

    겜하다 모르면 다시 찾아보고..게시판에 글도 올려보고...

    그런데 가끔보면 아주 쉬운거두..일일이 물어보시는

    좀 어의없는 경우를 보곤하죠...

    저사람은 귀찮아서 안찾아보고 물어보는것일까..하는 ;;

    어째든 초보자에겐 친절해야겟죠 ^^;

    아 그리고 걸인 수준으로 전락한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초보자에게 해당하는거겟죠?

    사회에서 부를 축적한 사람은 겜상에서도 부를 축적하죠 ;;

    이런 의미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요즘 겜이 너무 문제가 되기에 노파심에 하는말입니다...

    여튼 초보자뿐만이 아니구 보이지 않는 겜상이라구 해두 메너를 지

    킬주 아는 겜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좋겟네요 ^^
  • ?
    국사자습서 2005.02.27 21:53
    초보는 상관없는데
    무조건 돈좀달라고 붙어대는 인간들때문에.. ㄱ-



  • ?
    라프티 2005.02.28 08:57
    ↑옳소
    구걸할 때 돈 안주면 대략..
    "어쩌구님 엄청 개매너에요"
    이러는 분들도 있는데..
    실생활이라면 돈을 주고 싶은 맘이 있어도 못 주지만, 게임에서야 줄 필요도 없는 것을
  • ?
    레볼루션21 2005.02.28 11:00
    구걸하는 인간들 정말 ㅡ,ㅡ;;
  • ?
    스마일존 2005.02.28 14:53
    잘 몰라서 묻는 초보 유저분들은 괜찬지요
    하지만, 비매너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그냥 플레이하는
    그러한 비도덕 초보들이 문제인거 같네요.
    어디서나 그런 유저를 찾아볼 수 있고요.
    어쨋든 요지에서 벗어났지만, 조금더 초보 뿐만이 아니라
    타 유저들에게도 서로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이
    됬으면 좋겠습니다.
  • ?
    DESIGN 2005.02.28 22:56
    초보들을 도와 주면 좋지요 하지만 오픈베타 게임을 제외한 상용화

    게임이나 부분 유료화 게임에는 처음시작하는 사람보다는 세컨 캐

    릭터들이 많은 것이 부정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초보라고 해서 도와 줬는데 그가 돈도 많고

    레벨도 높은 고수라면 과연 초보를 도와 주고 싶을까요...

    세컨캐릭터가 존재하는한 초보를 도와 주는 고수분들은 많지 않

    을것입니다.

    마음속에 '내가 도와준 캐릭터가 세컨캐릭터가 아닐까'라는 의

    구심이 생길때가 있거든요,,,
  • ?
    다덴포레버 2005.03.02 14:08
    요즘엔 RPG를 안하고 다른걸 하니 대답없는 게임
    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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