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꼬마들의 놀이문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동네 문방구 앞에 놓인 쬐그만 오락기 앞에 추운 바람 맞으면서 삼삼오오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을 몇 번 보긴 했다. 하교때 북적이던 초등학교 운동장은 살 빼기에 여념이 없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차지가 되버렸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날은 춥고 아이들은 또 그들대로 바쁘다.
내가 어렸을 적, 동네 공터에는 으레 꼬맹이들이 몰려들었다. 땅바닥에 동그랗게 구멍을 파고 구슬치기를 하거나, 넙적한 돌맹이를 주워 비석놀이를 한다든지 하여 동네 공터는 늘 아이들이 이것저것 파고 그어 놓은 흔적들로 한 편의 추상화를 보여주는 듯 했다. 생각해보니 그때 여자애들은 어떻게 놀았을까 궁금해진다. 괄괄한 여자애들이야 남자애들과 부대끼면서 가끔 매서운 손맛을 보여주었지만 각자 주입받은 '성역할'에 충실했던 조용한 여자애들은 그 공터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끔 망가진 인형을 고쳐준다거나 하여 여자애들이 비교적 살갑게 대하는 편이었다. 부모님들 사이의 친분 때문에 아는 아이들도 몇 몇 있어서 초등학교 입학전에는 가끔 여자애들이랑 놀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그들만의 비밀스런 모임에도 종종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남자애들이 땅바닥에서 구르면서 우정을 다지는 동안 이들 비밀스런 모임의 참석자들은 따뜻한 온돌방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의 비밀스런 모임이란 바로 소꿉놀이. 보통의 남자애들에게는 실험용 쥐가 되기를 강요하는 고통스런 과정일 수도 있다. 아기에게 젖을 준다면서 놀이 내내 젖병을 계속 물고 있게 한다거나, 의사가 환자에게 주사를 놓고 '간호사, 이 주사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또 다른 주사를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아기나 환자는 대부분 초대된 남자애들이 도맡게 된다.
이렇게 규모가 큰 비밀스런 집회는 아니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세세한 것을 기억하기에는 무리지만 그들이 펼치는 역할놀이는 꽤 재미있었다. 계속해서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고 또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은 일류배우들의 애드립보다도 더 현실감 있었고 회를 거듭할 수록 그들의 연기력(?)도 높아져 가만히 누워있는 환자라 하더라도 마치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연극과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어쩌면 현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공연예술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물론 남자애들도 그것과 비슷한 놀이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 힘이 센 아이들이 '나를 따르라'라고 주문하는 마초형 캐릭터를 연기하고 다른 아이들은 그저 수동적인 엑스트라에 머물 뿐이었다.
세월은 흘러 흘러 이제 그런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잘 볼 수도 없을 뿐더러 (물론 우리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 그들의 언니들로부터 이어받은 비밀스런 모임을 유지할 것이지만)대부분의 꼬맹이들은 번쩍거리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소꿉놀이의 추억을 안고 있는 어른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놀이문화는 단순한 형태를 보인다.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한다거나 보드 게임방에서 루미큐브에 열중한다거나 하여도 대부분은 소비문화가 제공한 기본적인 틀 안에서 움직일 뿐이다.
하지만 PC 및 네트워크의 발달과 함께 성장해온 온라인게임은 좀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특히 MMORPG의 경우는 역할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소꿉놀이에 가장 근접하여 보인다. 비록 소꿉놀이에서 왕언니가 '그건 말이 안돼'라고 제한하던 것을 일반 게이머가 아닌 게임 시스템이 제약하는 것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지만 게이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캐릭터에게 주어진 역할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에서 아무리 역할을 세분화하고 그 역할로 즐길 수 있는 여러가지 상황을 만들어 준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다양한 게이머들이 모인 만큼 그들의 다양한 요구를 획일적인 시스템이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의 역할에 심취한 게이머의 경우 불만을 품기 마련이다.
나름대로의 역할을 맡아 경비병 NPC에게
이런 저런 말을 건네는 게이머를 본다면 다들 신기해 할 것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그러한 게이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컨텐츠가 홀로 레벨업에 전념하게끔 만들며 혹여 나름대로의 롤플레잉에 심취한 게이머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게이머들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하게 받아들여지기 일쑤이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이란 말을 달고 다니는 게이머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은 이상한 사람, 혹은 별난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이런 게이머들을 위해서 몇몇 해외 온라인 게임에서는 롤플레잉 서버(Role-Playing Server)를 제공한다. 현재 국내에서도 서비스 중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의 경우에도 북미지역에서 롤플레잉 서버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서버의 경우 온라인 게임 중 소꿉놀이에 가장 근접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역할놀이에 심취한 게이머라면 당연히 환영할 만하지만 이들 서버에서 게임을 즐기는 것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채팅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나 게임이 제공하는 시대적/역사적 배경과 판이하게 다른 현실에서 사용되는 말을 사용하는 등의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된다. 예를 들어 '^^' 등의 이모티콘, 혹은 '콜라'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당연히 제재를 받게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역할 몰입도를 방해하기 때문으로 그런 행위를 하는 게이머에 대해서 다른 게이머는 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그러한 행동을 한다면 당연히 서버에서 추방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역할놀이 - 롤플레잉에 심취한 국내 게이머는 그것을 즐기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 해외 패키지를 구입하고 매달 비용을 지출하지만 그마저도 영어에 약한 사람은 즐기기 힘들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롤플레잉 서버에 대한 요구가 있지만 일반 게이머에 비해 그 수는 매우 적으며 그러한 서버에 대한 인식도조차 매우 낮다. 어쩌면 척박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국내 온라인 게임계의 토양에서 롤플레잉 서버를 자신있게 개설할 게임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해외에서와 다른 서버 구성을 가지고 있는 국내 와우의 경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단 한개의 롤플레잉 서버 조차 존재하지 않는 국내 온라인 게임에서 어린 시절 느꼈던 소꿉놀이의 즐거움을 다시 느끼기란 쉽지 않다.
앞으로도 한동안 국내에는 롤플레잉 서버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쉽지만 귀부인에게 친절한 멋진 기사를 연기해보고 싶다거나 숲속에서 마법만 수련하는 괴짜 마법사의 역할을 맡고 싶은 이들은 해외 롤플레잉 서버를 보며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국내 온라인 게임의 컨텐츠가 좀 더 풍성해져서 다양한 게이머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온라이프21 객원기자 '황성철']
가끔 삐딱하게 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내가 어렸을 적, 동네 공터에는 으레 꼬맹이들이 몰려들었다. 땅바닥에 동그랗게 구멍을 파고 구슬치기를 하거나, 넙적한 돌맹이를 주워 비석놀이를 한다든지 하여 동네 공터는 늘 아이들이 이것저것 파고 그어 놓은 흔적들로 한 편의 추상화를 보여주는 듯 했다. 생각해보니 그때 여자애들은 어떻게 놀았을까 궁금해진다. 괄괄한 여자애들이야 남자애들과 부대끼면서 가끔 매서운 손맛을 보여주었지만 각자 주입받은 '성역할'에 충실했던 조용한 여자애들은 그 공터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끔 망가진 인형을 고쳐준다거나 하여 여자애들이 비교적 살갑게 대하는 편이었다. 부모님들 사이의 친분 때문에 아는 아이들도 몇 몇 있어서 초등학교 입학전에는 가끔 여자애들이랑 놀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그들만의 비밀스런 모임에도 종종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남자애들이 땅바닥에서 구르면서 우정을 다지는 동안 이들 비밀스런 모임의 참석자들은 따뜻한 온돌방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의 비밀스런 모임이란 바로 소꿉놀이. 보통의 남자애들에게는 실험용 쥐가 되기를 강요하는 고통스런 과정일 수도 있다. 아기에게 젖을 준다면서 놀이 내내 젖병을 계속 물고 있게 한다거나, 의사가 환자에게 주사를 놓고 '간호사, 이 주사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또 다른 주사를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아기나 환자는 대부분 초대된 남자애들이 도맡게 된다.
이렇게 규모가 큰 비밀스런 집회는 아니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세세한 것을 기억하기에는 무리지만 그들이 펼치는 역할놀이는 꽤 재미있었다. 계속해서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고 또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은 일류배우들의 애드립보다도 더 현실감 있었고 회를 거듭할 수록 그들의 연기력(?)도 높아져 가만히 누워있는 환자라 하더라도 마치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연극과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어쩌면 현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공연예술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물론 남자애들도 그것과 비슷한 놀이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 힘이 센 아이들이 '나를 따르라'라고 주문하는 마초형 캐릭터를 연기하고 다른 아이들은 그저 수동적인 엑스트라에 머물 뿐이었다.
세월은 흘러 흘러 이제 그런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잘 볼 수도 없을 뿐더러 (물론 우리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 그들의 언니들로부터 이어받은 비밀스런 모임을 유지할 것이지만)대부분의 꼬맹이들은 번쩍거리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소꿉놀이의 추억을 안고 있는 어른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놀이문화는 단순한 형태를 보인다.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한다거나 보드 게임방에서 루미큐브에 열중한다거나 하여도 대부분은 소비문화가 제공한 기본적인 틀 안에서 움직일 뿐이다.
하지만 PC 및 네트워크의 발달과 함께 성장해온 온라인게임은 좀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특히 MMORPG의 경우는 역할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소꿉놀이에 가장 근접하여 보인다. 비록 소꿉놀이에서 왕언니가 '그건 말이 안돼'라고 제한하던 것을 일반 게이머가 아닌 게임 시스템이 제약하는 것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지만 게이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캐릭터에게 주어진 역할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에서 아무리 역할을 세분화하고 그 역할로 즐길 수 있는 여러가지 상황을 만들어 준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다양한 게이머들이 모인 만큼 그들의 다양한 요구를 획일적인 시스템이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의 역할에 심취한 게이머의 경우 불만을 품기 마련이다.
나름대로의 역할을 맡아 경비병 NPC에게
이런 저런 말을 건네는 게이머를 본다면 다들 신기해 할 것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그러한 게이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컨텐츠가 홀로 레벨업에 전념하게끔 만들며 혹여 나름대로의 롤플레잉에 심취한 게이머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게이머들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하게 받아들여지기 일쑤이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이란 말을 달고 다니는 게이머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은 이상한 사람, 혹은 별난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이런 게이머들을 위해서 몇몇 해외 온라인 게임에서는 롤플레잉 서버(Role-Playing Server)를 제공한다. 현재 국내에서도 서비스 중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의 경우에도 북미지역에서 롤플레잉 서버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서버의 경우 온라인 게임 중 소꿉놀이에 가장 근접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역할놀이에 심취한 게이머라면 당연히 환영할 만하지만 이들 서버에서 게임을 즐기는 것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채팅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나 게임이 제공하는 시대적/역사적 배경과 판이하게 다른 현실에서 사용되는 말을 사용하는 등의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된다. 예를 들어 '^^' 등의 이모티콘, 혹은 '콜라'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당연히 제재를 받게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역할 몰입도를 방해하기 때문으로 그런 행위를 하는 게이머에 대해서 다른 게이머는 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그러한 행동을 한다면 당연히 서버에서 추방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역할놀이 - 롤플레잉에 심취한 국내 게이머는 그것을 즐기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 해외 패키지를 구입하고 매달 비용을 지출하지만 그마저도 영어에 약한 사람은 즐기기 힘들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롤플레잉 서버에 대한 요구가 있지만 일반 게이머에 비해 그 수는 매우 적으며 그러한 서버에 대한 인식도조차 매우 낮다. 어쩌면 척박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국내 온라인 게임계의 토양에서 롤플레잉 서버를 자신있게 개설할 게임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해외에서와 다른 서버 구성을 가지고 있는 국내 와우의 경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단 한개의 롤플레잉 서버 조차 존재하지 않는 국내 온라인 게임에서 어린 시절 느꼈던 소꿉놀이의 즐거움을 다시 느끼기란 쉽지 않다.
앞으로도 한동안 국내에는 롤플레잉 서버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쉽지만 귀부인에게 친절한 멋진 기사를 연기해보고 싶다거나 숲속에서 마법만 수련하는 괴짜 마법사의 역할을 맡고 싶은 이들은 해외 롤플레잉 서버를 보며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국내 온라인 게임의 컨텐츠가 좀 더 풍성해져서 다양한 게이머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온라이프21 객원기자 '황성철']
가끔 삐딱하게 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