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사재기와 시세조작을 같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재기 즉 매점매석 행위로 인해 당연히 시세가 올라가기 때문에 이를 인위적인 시세조작으로 보고 있다는 겁니다.
일단 사재기와 시세조작의 결과물이 '시세변화'라는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발생하는 상황은 다릅니다.
이 문제는 현실 경제에서의 '사재기'와 '시세조작'의 의미를 그대로 게임에 적용해 버려 나타나는 인식의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현실경제와 게임경제의 차이점을 알아 보겠습니다.
■ 생산과 소비 패턴
농사를 예를 들어 보죠. 제가 작년에 배추를 심었습니다.(아.. 실제 심은건 아닙니다.ㅠ) 근데 풍작이 들었네요. ^^; 근데 저만 풍작이 들었으면 괜찮은데, 남들도 다 풍작이에요;
이때 중간상인이 아주 싼 가격으로 인근의 배추를 다 사가지고 갔습니다. 어느날 시장에 나가 보니 분명히 포기당 500원에 팔았는데 5000원에 팔리고 있는거에요.
중간상인의 입장에선 매집한 배추의 80%를 갖다 버려도 두배가 남는 상황이네요. 20%만 시장으로 운송하기에 부대비용까지 아끼게 되었네요.(풍작으로 인해 원가가 하락되었지만 중간상인의 물량 조절로 인해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은 오히려 올라갈 수도 있는 상황)
소비자의 입장에선 직거래를 했다면 500원에 살 수 있었는데 중간상인들 때문에 4500원의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래도 김장을 하기 위해선 아무리 비싸도 사야겠죠. 그게 시세니깐요.
생산자의 입장에선 배가 아플 뿐이죠. 배추를 좀 남겨 둘 껄이라는 후회도 생깁니다.
게임으로 들어가 봅니다. 부지런히 던전을 돌아 철광석을 100개 모았습니다. 거래소에 보니 시세가 50원이네요. 빨리 팔기 위해 49원에 올려 두었습니다. 근데 올리자 마자 팔려 나가는군요. 흐뭇합니다. ^^v
요즘은 철광석이 나오지 않는 던전을 돌고 있습니다. 근데 새로 제작할 수 있는 아이템에 철광석이 재료로 쓰입니다. 이전 던전으로 돌아가기가 귀찮아 거래소에 들렀습니다. 이런, 500원에 팔리고 있군요. 너무 비싸요! 그러나 철광석 던전으로 가기 귀찮아 구입을 해 버렸습니다.
자... 여기까지 보시고 현실과 게임 경제의 차이점을 눈치 채셨죠? 완전히 다른 생산과 소비패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위의 배추농사를 게임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들판에 배추가 일년내내 지천으로 깔렸습니다. 가서 파 오기만 하면 됩니다. 100포기를 파서 시장에 500원에 내다 팔았습니다. 흐뭇합니다. 김장을 담글때가 되었네요. 근데 배추 파러 가기가 귀찮아요. 그래서 시장에 들렀습니다. 이런, 5000원 하네요.
돈이 없다면 스스로 배추를 파러 가야겠죠. 그러나 시장에 온김에 10포기만 일단 사고, 나중에 한가할 때 배추밭에 가서 20포기를 파와 본전 이상을 챙기리라 마음 먹기도 합니다.
현실과 게임에서 똑 같은 배추라는 아이템을 구입하게 되는데, 게임에선 피해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뿐 더러 오히려 본전 이상도 챙길 수 있게 됩니다.
현실에선 일방적인 생산과 소비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임에선 자신이 생산자이며, 소비자라는 동시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극악의 드랍률 재화(매점매석)
현실에서 극악의 드랍률을 가진 재화는 '다이아몬드'겠죠. 사치품으로 취급합니다. 당연히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아이템이죠. 사람들이 풍요로워지면 수요가 많아지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수요가 적어지겠죠.
그런데 만약, 벼농사가 흉년이 들어 극악의 드랍률을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뭐,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되겠어요. 라면 먹거나, 빵 먹거나, 햄버그, 국수, 수입쌀 등등으로 때우겠죠. ^^;
이렇듯 현실에선 대체재와 보완재가 많고, 부의 정도에 따른 적절한 수요의 탄력성이 생깁니다. 중간 상인의 입지가 줄어드는 결과가 발생한다는거죠.
물론 현실에서의 매점매석 행위는 '물가안정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에 의해 불공정한 거래 행위로 규정하고 금지 시키고 있습니다.
만약 게임이라면 공급이 부족해 지는 아이템을 미리 예상하고 매점매석(사재기)을 했을 때, 처벌 규정이 없습니다.
이때 부의 쏠림화 현상이 심각해 지는데요. 가난한 유저는 계속 궁핍해 지고, 자본이 튼튼한 유저는 계속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위의 철광석 예에서 처럼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라는 게임의 경제 패턴이 극악의 드랍률 아이템으로 인해 소비자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의 패턴이 적용되고, 사치품이 아닌 꼭 필요한 아이템일 경우 수요의 탄력성마저 무너져 버립니다. 이때 대체재나 보완재가 없을 경우 상황은 더욱 더 심각해 집니다.
■ 사재기, 매점매석과 시세조작
사재기(또는 매점매석)와 시세조작의 공통점은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행위에 대한 결과물이 같다고 해서 의미가 같은 건 아닙니다.
과정을 살펴 보죠.
사재기는 공급이 적어질 품목에 집중됩니다. 공급이 적어지는 이유는 '드랍률 하락'도 있겠고, 수요의 증가도 있을 겁니다. 가격이 당연히 상승되며, 사재기로 인해 더 높은 가격으로 상승해 버립니다.
인위적으로 시세조작을 하지 않더라도 물가가 '폭등'하는 원인이 됩니다. 굳이 시세를 조작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주식의 경우 투자행위에 해당됩니다. 주식 외에 가격을 좌우(매점매석에 의한 담합) 할 수 있는 세력에 의해 사재기(이때 사재기에 의한 매점매석 발생)가 발생한다면 벌금을 많이 물겠죠.
시세조작은 여러가지 경우가 있겠으나, 공급이 적어지리라 예상했던 품목이 드랍률 상승으로 인해 오히려 싸졌을 경우를 예를 들면 사재기 해 둔 걸로 인해 손해가 막심해 집니다. 이때 인위적인 방법으로 시세를 조작해서 가격을 상승 시켜 버립니다.
아주 서서히 진행됩니다. 그리고 목표로 하는 가격에 도달 했을 때 전부 처분해 버리고 빠집니다. 시세조작이 빠진 상태에서 시장은 가격의 안정을 빠르게 되찾게 되는데, 이때 '폭락'해 버립니다. 주가조작에 해당되며, 많은 투자자들이 울고 불고 난리가 날 겁니다.(매점매석까지의 사재기가 필요 없음)
좀 정리 해 보자면...
사재기는 시세 상승을 예상해 투자해 두는 것이며, 매점매석은 사재기를 통해 시장을 장악해서 가격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며, 시세조작은 시장 장악 능력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조작을 통해 가격을 상승 시켜 차익을 얻는 것입니다.
■ 게임 경제에 미치는 영향
사재기의 경우 '가격'을 정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가지게 되는 '매점매석' 행위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투자'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공급되는 모든 아이템을 매점매석하여 가격을 일방적으로 통보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는 유저가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나 게임이라고는 하나 시장의 자체 정화 능력이 있습니다. 소비를 스스로 위축시켜 가격을 안정 시키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장의 자체 정화' 능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중에 필수 아이템의 드랍률 하락도 분명히 한몫하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마영전>의 경우 '1억 신화의 주인공'(2억 신화의 주인공도 스샷인증했더군요;;)의 경우 게임의 경제에 있으선 고수임에 틀림 없기에 <마영전 디스>의 인터뷰 내용을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인터뷰 내용중에 "돈만으로 해결할려는 유저"라는 대목은 '시장의 자체 정화 능력'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직접 던전을 돌며 아이템을 구할려는 유저가 많아 질수록 가파르게 가격이 하락할 것이며, 비록 아이템을 다 모으지 못했더라도 빠른 시일내에 적절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물론 유저들은 "더러워서 직접 구하고 만다(자급자족)"는 단순한 생각이 가격하락의 요인이 되며, 시장 자체 정화 능력으로 이어집니다.
위의 예에서 보았듯이 '사재기'로 인해 공급의 탄력성이 낮아져서 비정상적인 가격을 유지하고 있더라도 '유저들의 자체 정화'라는 수요의 탄력성을 통해 정상적인 가격대를 회복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필수 아이템 드랍률의 극악한 하락은 수요의 탄력성 마저 낮추는 원인이 되어 정상적인 가격대로의 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 이상적인 게임의 경제란?
현실의 경제와 비교해 그 규모가 좁쌀 보다도 작은 게임의 경제가 몇몇의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개선해야만 합니다.
어차피 현실이든 게임이든 경제가 존재한다면 당연히 자본이 존재하게 되며,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마저도 현실과 유사한 게임의 재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제원리를 게임에서 굳이 즐겨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듭니다.
대부분의 RPG류 게임들이 경제를 대입하고 있습니다. 콘텐츠량을 늘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여기서 비열한 자본의 논리도 파생이 됩니다.(게임사와 자본 유저가 공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생산의 개념을 집어 넣어 몰입도를 장시간 유지시켜 줄 수 있는 '사냥 시스템' 사냥에 의해 생산된 아이템을 팔 수 있는 '거래 시스템' 아이템의 소멸을 촉진 시켜 거래를 활성화 하는 '소비시스템' 등 RPG에서 제공하는 거의 모든 콘텐츠는 경제와 관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누구나 풍요로운 게임 라이프를 영위할 수 있는 이상적인 게임의 경제란 존재하지 않는걸까요?
이런 'RPG 온라인 게임'이 마음에 안든다면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패키지 게임'으로 회귀를 해야 할까요?
어느 게이머가 말한 명언이 생각나는군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주)필자의 잠자리 날개 보다 얇은 경제지식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경제용어의 의미와 해석이 틀릴 수 있다는 걸 강조합니다. 사실 경제 관련 책을 본지도 백만년이 지난 느낌이에요.
[온라이프존] 병아리 논객 '하데스'
이글은 오직 온라이프존에만 게시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