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6.25전쟁 60년 특별기획 - 우리는 기억합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 전쟁 기념 공원
이 기념공원의 동상들은 한국 전쟁 중 장진호 전투(1950.12)의 정찰 대대를 형상화한 것이다.
장진호 전투는 중공군 12만명 규모의 7개 사단병력에 의해 사방이 완전히
포위된 채 토끼몰이식으로 퇴로를 차단당한 미8기병연대 3대대가 전멸한 전투이다.
미군 역사상 최악의 전투로 불리우고 있다.
장진호 전투란 1950년 6·25 때 미군 제1해병사단이 함경남도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함흥으로의 철수에 성공한 작전으로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 사이에 있었다.
1950년도 사건 당시, 미국의 뉴스위크지는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라고 평가했다.
미군의 전사에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되어 있으며,
1 해병사단 외에 미국 육군 7사단 병력 일부도 함께 하였다.
겨울이 오면 실제 장진호 전투의 상황처럼 변하는 조형물이다.
이 공원을 방문한, 장진호 전투 생존자의 눈물...
이것은 한국전쟁 기념공원에 있는 글귀이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미국은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바친 미국의 아들과 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당시 장진호
그당시에 미군 제1해병사단은 유엔군의 북진때 원산항으로 상륙하여
서부전선에서 북상중인 미 제8군과 접촉을 유지하려고
장진호 계곡을 따라 강계방면으로 전진하던 중 장진군 서한면 유담리·신흥리 일대에서
중공군 7개사단으로부터 포위,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 지역은 높이 2,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남북으로 뻗어 낭림산맥을 이루고 있고,
흥남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어 철수작전을 어렵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해병은 40㎞의 협곡지대를 돌파하여 철수에 성공한다.
이 철수작전의 성공은 결과적으로 청천강일대에서 수세에 빠져 있는 미 제8군의 철수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또한 중공군의 함흥지역 진출을 2주간 지연시켜 국군과 미군의 흥남철수를 성공시킬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 철수작전에서 미군은 6,532명의 병력 손실을 입는다.
그러나 이 후퇴작전을 통해서,
미 해병1사단은 자신의 10배에 달하는 12만의 중국군 남하를 지연시켰으며,
중국군 12만 명의 포위를 뚫고 흥남에 도착, 흥남 철수를 통해 남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흥남 철수는 193척의 군함으로 군인 10만 명, 민간인 10만 명을 남쪽으로 탈출시킨 사건을 말한다.
이 후퇴작전이 1.4 후퇴의 시작이었다.
미 해병1사단의 이 퇴각작전으로 중국군을 저지함으로써
국군과 유엔군, 피란민 등 20만명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으며,
서부전선의 미 8군이 중공군을 방어할 수 있었다.
장진호 전투로 인해 중국군의 함흥 지역 진출은 2주간 지연됐고 중국군 7개 사단은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당시 개마고원 장진호 일대는 고도 1000미터의 산악지형으로서, 낮기온 영하 20도, 밤기온 영하 45도였다.
민간인과 국군을 먼저 193척의 군함으로 피신시키고
자신들은 중공군과 계속 싸우며 남하를 저지하다가
한 대대를 포함한 6500여명이 동사 또는 전투 중 사망했다.
스탈린그라드와 함께 장진호 전투는 세계 2대 동계 전투로 불린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외국 장병들의 희생이 있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국에 와서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지켜주었다.
이것은 한국전쟁 기념공원에 있는 글귀이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