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스마트폰 앱스토어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앵그리버드. 일요일 황금시간대에 굵직굵직한 예능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높은 시청률과 인기를 받고 있는 나는 가수다. 이 각각의 게임과 가요프로그램은 공통점이 있다. 컨텐츠를 소비하는 대상이 일반적인 컨텐츠와는 다른 방법으로 소비를 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자극적이고 중독성이 강한 컨텐츠가 각광받는 시대에 편안하고 깊이가 있는 컨텐츠를 사용하도록 유도했고,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컨텐츠에 많은 소비자들이 열광하게 된 것이다. 쉽게 표현한다면, 패스트푸드에 질린 소비자들을 위해 앵그리버드와 나는 가수다가 일종의 슬로우푸드로 소비자들을 공략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스마트폰게임인 앵그리버드와 요즘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나는 가수다는 소비자가 컨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매우 비슷하다.
1. 21세기 가요계와 게임계, 인스턴트 컨텐츠 열풍
소위 가요계의 전성기라 일컬어지는 90년대 가요와 2000년이 넘은 지금 시대의 가요를 비교해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전주와 간주가 사라졌다. 90년대 가요는 전주부터 시작해서 클라이막스까지 서서히 분위기가 올라가고, 1절과 2절을 이어주는 간주를 통해 부드럽게 가요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21세기 가요는 5초 이내의 전주만을 사용하여 빠르게 노래가 시작되고, 서서히 분위기가 올라가기보다는 특정가사와 멜로디를 한 노래에 여러 번 반복되게 하면서 중독성이 느껴지도록 하고, 혼자보단 그룹으로 여러 명이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3~4분 동안 노래가 정신없이 흘러가도록 만들고 있다. 이는 감성적인 부분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대중가요 소비자들이 단순하고 중독성있으며, 빠르게 대중가요를 소비하고 새로운 대중가요를 들으려는 의식으로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와 최근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K-POP의 성공방식은 상당히 비슷하다. 자극적이며 중독성이 강하지만, 쉽게 질리기 때문에 금방 새로운 걸 찾는다. 소비자의 인스턴트한 소비방식을 잘 반영한 것이다.
게임도 가요계의 흐름과 비슷하다. 90년대 게임들은 그래픽 같은 비주얼적인 면이나 기술력으로 승부하기 보다는 스토리, 이벤트 등으로 유저의 재미를 충족시켜준다. 이런 90년대 게임들의 특징은 게임에 깊이가 있고, 처음부터 게임에 몰입이 되기보다는 플레이를 하면 할수록 더 몰입이 깊어지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21세기 게임들은 컴퓨터나 콘솔기기들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그로 인해 비주얼과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게임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게임의 스토리나 내용보다는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게 된다. 또한 경쟁작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좀 더 자극적인 요소(선정성, 폭력성, 사행성 등)들이 많이 추가된 게 21세기 게임들의 특징이다. 이런 게임들을 즐기는 유저들은 90년대 게임과는 달리 빠르고 쉽게 게임에 몰입이 가능하며, 오래 플레이하기 보다는 빠르게 게임을 소비하려 하고, 다른 게임을 즐기려고 한다. 게임 유저 역시도 대중가요 소비자처럼 게임을 소비하려는 의식이 달라졌다는 증거다.
20세기 게임은 예술성(스토리, 컨텐츠, 감성)에 신경을 많이 쓰는 반면, 21세기 게임들은 기술력과 비주얼(그래픽, 캐릭터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컴퓨터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유저들이 게임을 소비하는 성향도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2. 반(反) 소비자들이 생기기 시작
가요와 게임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면서 부정적인 부분을 꼬집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요의 경우 가장 먼저 립싱크에 대한 문제가 대두됐고, 가수들이 무대에서 입는 의상과 노래가사, 춤 등의 선정성과 중독성 등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그래픽이 발전하면서 나타난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선정성, 폭력성, 그리고 게임내용 중 몇몇 시스템에 등장하는 사행성 등이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대게 요즘 시대에 등장하는 가요와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인데, 재미있는 건 이 사람들이 그렇다고 가요와 게임을 소비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이 문제 때문에 가장 말이 많은 단체가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인데, 그럼 여가부 사람들이 평소에 음악을 아예 안 듣고 노래방도 가지 않는 걸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럼 게임은 어떻냐고? 여가부 사람들이 고스톱 다 칠 줄 모를까? 어렸을 때 오락실 한번쯤 안 가본 사람 있을까?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가요와 게임 소비를 반대하고 있다. 일종의 반(反) 소비자인 셈이다. 이런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소비하고 싶은 컨텐츠가 나와주길 바라는 마음에 지금의 인기 있는 컨텐츠들을 수정하거나 소비를 반대한다. 또한 이런 소비자들은 예전 90년대에 인기 있었던 가요나 게임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소비자들은 인스턴트한 성향을 가진 가요와 게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사람들도 게임이나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들이지만 지금의 게임과 음악에는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보인다. 달라진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앵그리버드와 나는 가수다. 반 소비자를 겨냥
이런 와중에 재밌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9년 12월에 만들어진 앵그리버드라는 게임이 전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앵그리버드를 자세히 뜯어보면 마치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화려한 3D 그래픽이 돌아간다는 아이폰에서 너무나 투박하고 원색이 많이 사용된 2D 그래픽에, 그냥 드래그 한번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단순한 게임방식은 화려한 그래픽과 다양한 인터페이스와 조작법을 사용하는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출시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결과가 의미하는 바가 뭘까? 마치 패스트푸드 같은 자극적이고 중독성강한 요즘 게임에 지친 많은 유저들이 예전 90년대 게임에서 느껴지는 슬로우푸드 같은 부드럽고 깊이있는 느낌을 가진 게임을 원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이 같은 모습은 소셜게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전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시티빌, 팜빌 같은 게임의 장르는 경영 시뮬레이션인데, 이 장르는 요즘 시대에 나오는 게임보다는 90년대에 인기를 끈 심시티, 롤러코스터 타이쿤, 주 타이쿤 같은 게임과 비슷하다.
페이스북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시티빌은 90년대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심시티와 게임방식이 매우 흡사하다.
얼마 전 MBC에서 새롭게 시작한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도 상당히 비슷한 케이스다. 우리나라에서 저녁 시간대에 방송되는 가요 프로그램은 대부분이 아이돌 가수들이 나와 아이돌 음악만을 부른다. 그 와중에 나는 가수다 라는 새로운 가요 프로그램이 생겨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기존의 가요 프로그램과는 달리 TV에 잘 출연하지 않는 가수들이 등장하고, 8~90년대에 많은 인기를 누린 명곡들을 재해석해 노래를 부른다. 역시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결국 이 프로그램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음원들은 새로 나올 때마다 왠만한 아이돌 노래보다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한다. 이는 대중가요 시장이 아이돌 가요가 아닌 대중가요도 충분히 소비자층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이 생기기 전에 이런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던 이유는 아이돌 가요만 홍보할 수 있는 프로그램만 있었기 때문이다.
김범수 같은 가수가 지금에서야 인기를 얻는 이유는 이런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홍보할 만한 시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4. 90년대 스타일에 요즘 시대 정서가 잘 묻어나야
위 글까지 보면 그럼 90년대 가요나 게임을 지금 그대로 다시 팔면 되지 않겠느냐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너무 오래된 느낌이 나기 때문에 인기를 끌기 힘들다. 오래된 느낌이 난다는 것은 결국 요즘 시대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앵그리버드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새를 날릴 때 화면에다 손가락을 대고 새총을 직접 쏘듯이 뒤로 드래그를 했다가 손가락을 땐다. 터치스크린이라는게 없던 90년대엔 즐길 수 없는 새로운 재미다. 90년대에 인기있었던 심시티의 경우 여러 가지 자원이나 게임상의 돈으로 도시를 운영하고 확장시킬 수 있었지만, 시티빌의 경우 도시를 경영하고 확장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자원은 인맥이다. 이번 부분이 90년대 스타일을 가진 게임임에도 세련되게 느껴지는 이유다. 나는 가수다에서도 가수들이 원곡을 그대로 부르지 않고 편곡해서 요즘 정서에 맞게 바꿔 부르는 이유도 듣는 사람에게 세련된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90년대 성공했던 심시티가 지금 나온다고 해서 성공하진 않는다. 게임이 세련되지 못하기 때문에 유저들이 쉽게 몰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