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사냥이 불법이던 시절도 있었지... (5358) 게임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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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사냥이 불법이던 시절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2000년 대엔 온라인게임을 하면서 "불법 자동사냥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을 굉장히 혐오했었다. 직접 사냥하면서 경험치를 얻고 아이템을 얻는 과정 자체가 RPG의 당연한 과정이고 묘미라고 생각했기에 불법은 둘째치고 자동사냥이라는 존재 자체가 게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봤다.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유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나와 생각이 비슷했고 당시 풍토가 그랬다.


중국산 웹게임에 의해 점점 바뀌는 유저들


근데 점점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온다. 아마 2000년 대 말부터 일 것이다. 중국산 웹게임이 돌풍을 일으키며 국내 게임 시장에 막 침투하기 시작하는데 "웹RPG" 라는 장르가 그 중 가장 비중이 높았다. 이들 게임의 특징은 캐릭터 육성 자체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육성 시스템 및 컨텐츠의 다양성, 편의성 등을 강화시킨 것이었다. 그 중 핵심이 "자동사냥"이었다. 모든 퀘스트 및 사냥이 중간 중간 클릭 몇번만 하면 자동으로 이뤄지는, 이전 게임들과 비교하면 극강의 편의성을 제공했다.

대체로 전체적인 퀄리티가 떨어지는 게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들 게임은 자연스럽게 먹히는 게임이 되었다. 기존 게임과 비교했을 때 직접 컨트롤하는 사냥이라는 힘들고 불편한 과정이 생략되고 캐릭터 육성 자체를 그저 숫자로만 확인해도 되고 관리할 수 있으니 일부 유저들 입장에선 매우 편한 것이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기존 게임들이 강요하는, 획일화된 사냥 과정 및 육성 시스템과 별발전이 없는 컨텐츠 등등이 웹RPG에 환호하는 유저들을 부추겼던 것 같기도 하다.

이는 국산 온라인RPG에도 영향을 알게 모르게 준다. 자동사냥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냥 및 육성의 편의성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급변환하게 된다. 어떤 복잡한 게 있어도, 어떤 불편한 점이 있어도 '게임의 일부야' 라는 암묵적 논리로 넘어갔던 부분들이 웹RPG로 드러낸 유저들의 성향에 의해 급격하게 바뀌며 게임을 바꾸게 된 것이다. 그렇게 게임들은 최소한 초중반까지는 쉽게쉽게 진행하는 "선easy 후hard" 스타일로 점점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초반엔 적응을 쉽게 해서 유저를 묶어두고 후반엔 핵심 및 최종 컨텐츠로 승부를 거는 것이다.


어느덧 자동사냥은 당연한 것


자동사냥이 확고하게 정착된 건 2010년 대 들어 모바일RPG 시대가 본격 도래한 후부터인 것 같다. "플랫폼의 특징 및 한계" 라는 핑계 같은 명분을 내세워 아주 자연스레 자동사냥은 당연히 혹은 무조건 있어야할 시스템이 되어있었다. 유저들의 인식 또한 그런 흐름에 자연스레 녹아들어간 상태였고. 모바일RPG를 즐기고 있던 어느 날 문득 과거 자동사냥을 혐오하던 내가 자동사냥을 더 요긴하게 사용하기 위해 각종 세부설정을 만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묘했다. 기분이. 좀 거창하게 말하는 것 같긴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에 개인의 소신은 자연스럽게 분해되어 있는 상태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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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피릿위시의 자동사냥 관련 유료서비스


거침없는 자동사냥의, 게임으로의 침투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더욱 심화하고 있다. 최근 출시된 "스피릿위시" 라는 게임은 자동사냥은 당연하고 심지어 접속을 하지 않아도 일정 기간 자동사냥을 실행하게 해주는 기능을 유료아이템으로 팔고 있다. 거기에 국내 모바일게임 매출 1위의 "리니지M" 또한 곧 스피릿위시의 그것과 비슷한 기능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검은사막 모바일도 최근 업데이트로 비슷한 기능의 "흑정령 모드"를 내놨는데 결국 이런 기능도 트렌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쯤되면 RPG에선 직접 컨트롤할 이유도 의미도 없는 상황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점점 "시뮬레이션화" 되어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자동사냥의 역설?


그런데 언뜻 이런 생각도 든다. PC온라인게임 시장에서 RPG의 지속적인 약세화를 결부시켜 생각해보면 일종의 RPG의 생존과 관련된 몸부림 같은 게 아닌가 싶다. 크게 보면 전통적인 스타일의 RPG가 도태되어 나가는 과정이 자동사냥이라는 매개로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RPG를 생존시키기 위해 도입된 자동사냥이 역설적으로 RPG를 점차 사라지게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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