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연인

- 소재 : 소중한 이를 대신한 복수

 

 

 

 

 

 

지이이이잉- 지이이잉-

 

시계에 5시 50분이라는 숫자가 떠오르기가 무섭게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요란스럽게 제 몸을 울려댔다. 한참 꿈 속에서 헤매고 있던 수아는 자동적으로 탁자로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손 안에서 여전히 울려대는 휴대폰의 알람을 끄고,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살금살금 숨어 들어오는 이 시간은 수아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으하아- 일어나야지!"

 

이불을 대충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약 15분에 걸쳐서 세안과 양치를 마치고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갈아 입었다. 목에는 앙증 맞은 하늘색의 미키마우스 모양 MP3를 걸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조깅을 하러 나가기 위해 현관문을 연 수아에게 뭔가가 눈에 띄었다.

 

현관문 앞에 놓인 새빨간 장미 꽃다발과 꽃다발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작은 편지, 그리고 정성스럽게 포장된 손바닥만한 상자였다. 그녀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선물 꾸러미들을 품에 안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거실 탁자 위에 올려 놓고는 날아갈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조깅을 나섰다. 오늘 하루는 무척 상쾌하고 기분 좋은 날이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대체 뭔 일이래? 아침부터 웬 경찰들이야?"

"글쎄, 나도 몰라. 경찰들이 꽤 많이 왔던데,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봐."

 

아직은 이른 아침인 7시 30분. 수아가 사는 아파트의 아침은 평소와 달리 시끄러운 웅성거림과 함께 시작되었다. 어느 틈엔가 경찰차를 발견한 아파트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 들어서는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파트 건물의 창문에도 여기저기 머리 하나씩을 밖으로 쏙 내밀고 바깥을 내다보는 이들도 있었다. 경찰차 안의 운전석에 앉아 소란스러운 주민들 무리를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리던 형사가 아무렇게나 비죽비죽 자란 턱수염을 손가락으로 긁적이며 물었다.

 

"신고한 사람 집이 어디랬더라?"

 

그의 물음에 조수석에 앉아 있던 통통한 몸집의 형사가 얼른 품에서 수첩을 꺼내 뒤적거리다가 대답했다.

 

"어… 104동 702호랍니다."

 

턱수염을 긁적이던 남자가 그 말을 듣고는 차 문을 벌컥 열어 젖히고 밖으로 나갔다. 옆 좌석의 남자도 서둘러 그를 쫓아 문을 열고 따라나섰다. 그들의 뒤를 이어 경찰 몇 명이 104동으로 들어갔다.

경찰 대여섯 명과 형사 둘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침묵을 지키며 서 있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덕분에 아파트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마치 잘못을 저지른 꼬마처럼 그들을 보곤 잔뜩 긴장을 한 듯 했다. 그들이 7층에 도착하자 새하얗게 얼굴이 질려서 몸을 벌벌 떨고 있는 수아가 넋이 나간듯 엘리베이터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지저분한 턱수염의 형사가 그녀를 보고는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수아는 그제서야 멍한 눈길을 그에게로 돌렸다. 그녀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보였고, 눈동자는 불안감에 젖어 흔들리고 있었다.

 

"흠흠, 신고하신 분이 맞으십니까?"

"…네…네, 제가 신고했어요."

 

울음이 가득 찬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한 그녀는 여전히 몸을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저는 박건형 형사라고 합니다. 신고하신 내용의 그 물품은 어디 있습니까?"

 

건형은 가볍게 형사수첩을 꺼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수염을 건드리는 것이 버릇인 듯, 손바닥으로 수염을 문지르며 뒤에 모여 있는 경찰들에게 수색하라는 의미가 담긴 눈짓을 보냈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정신이 없어서. 그건, 집 안에 있어요."

"그럼 실례지만 집 안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건형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경찰들이 일사불란하게 수아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건형의 뒤에서 우물쭈물하며 한 마디도 하지 못한 통통한 남자가 그제서야 수아에게 말을 걸었다.

 

"저는 이민호 형사입니다! 죄송하지만 어떻게 그 물품이 발견되었는지 자세히 설명 부탁 드립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수사에 열의를 가득 띈 민호를 보고는 수아에게 질문하는 것은 그에게 맡겨도 별 무리가 없겠다 생각했는지 건형은 경찰들과 같이 수아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수아의 집은 흠 잡을 데 없이 아주 깔끔하고 시원한 인테리어를 자랑했다. 대체적으로 하얀색과 파란색의 조화가 어루어진 집 안은 분위기 좋은 고급 호텔 방 같았다. 그러나 거실 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평화로운 조화를 단번에 깨뜨리는 이질적인 물건이 눈에 확 들어왔다. 다름 아닌 장미 꽃다발과 그 옆에 놓인 선물 상자였다. 특히나 선물 상자는 내용물을 보고는 무척이나 놀라 그대로 내던져 버린 듯 상자 뚜껑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내용물은 탁자 위에 쏟아진 듯 했다.

 

"상자 속에 든 내용물이 진짜 사람의 손가락이던가?"

 

건형이 선물 상자를 조사하고 있던 경찰에게 다가와 질문했다. 사진을 찍고 있던 경찰은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가리켰다. 얼핏 보면 마네킹의 손가락처럼 보일 그것은 잘려진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약간 거무잡잡한 피부색에 굵직한 것이 여자의 손가락 같지는 않았고 심플한 디자인의 은빛 반지가 잘려진 손가락 끝에 끼워져 있었다. 손가락의 여기 저기엔 시간이 지나 굳어 버린 피가 묻어 있었다. 선물 상자의 바닥을 보니 피가 덕지덕지 묻어 역겹기 짝이 없었다. 곱게 포장이 된 상자 속에서 이런 기괴한 선물이 나올 줄 그 누가 예상이나 했으랴.

 

"음… 그럼 선물은 현관문 앞 쪽에 놓여 있었다는 말씀이시죠?"

 

민호는 그녀가 말하는 것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손을 바삐 움직이며 수첩에 기록을 하고 있었다. 수아는 한기를 느끼는 듯 연신 팔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물 상자랑 장미 꽃다발, 그리고 편지가 같이 있었다고 했었죠? 편지 내용은 읽어 보셨나요?"

 

민호의 질문에 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선물 상자를 열어보고 너무나도 놀란 탓에 신고를 하고 그대로 집에서 뛰쳐 나와 다른 것은 살펴볼 여유 조차 없었다. 민호는 볼펜을 주머니에 집어 넣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군요. 음… 그럼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수아 씨는 여기 계시겠어요?"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놀라셨을텐데 죄송하지만, 이따 저희와 함께 경찰서에 가셔야 하는데 옷을 갈아 입으시려면 갈아 입으셔도 됩니다."

 

수아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엉망진창으로 꼬여 버린 이 시간이 지옥 같았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 조차 못한 엄청난 이변이었다. 민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건형도 장미 꽃다발 속에서 편지를 발견하고는 조심스레 꺼내 읽고 있던 참이었다.

 

"형님, 꽃다발과 선물은 현관문 앞 쪽에 놓여 있었답니다. 수아 씨는 아침마다 조깅을 하는데 오늘도 역시 조깅을 하려고 일찍 나섰다가 그것들을 발견했답니다. 그래서 집 안에 다시 들어와서 여기에 올려놓고 조깅을 마치고 돌아와서 열어 보고 신고를 한 거랍니다."

"흠, 그래. 엘리베이터 CCTV에 범인 얼굴이 찍혔을 지 모르니 조사 준비하고."

 

건형은 편지 내용을 빠르게 훑어보며 민호에게 말했다. 민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을 한 번 휘 둘러보았다. 자신의 집과는 다르게 곳곳에 묻어 있는 여자의 섬세함에 감탄한 듯 했다.

 

"편지 내용은 어떤가요?"

 

민호의 질문에 건형이 그에게 편지를 건네주었다. 편지는 아무것도 써 있지 않은 하얀 봉투에 들어 있었다.

 

《 당신을 언제나 지켜보고 있어요. 그 누구라도 당신을 건드리는 자에겐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ㅡ 당신의 K 가ㅡ 》

 

컴퓨터로 인쇄를 한 편지의 내용은 무척이나 간결했지만 강렬했다. 민호가 얼굴을 찌푸리며 편지를 다시 봉투 속에 넣었다.

 

"'당신의 K'라…. K의 의미는 아무래도 이니셜인 것 같죠?"

 

건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미 꽃다발을 들어 장미의 향기를 맡았다. 꽃잎이 촉촉하고 향기가 물씬 풍기는 것이 아직 싱싱했다. 꽃다발을 다시 내려놓던 건형이 꽃다발 끝에 달린 작은 종이를 뒤집어 보았다.

 

"'푸른 화원'? 근처에 이런 이름의 꽃집이 있나?"

"아, 거기. 이 아파트 정문으로 나가서 큰 길의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다보면 있는 꽃집이예요."

"꽃다발을 거기서 샀나 보군."

 

건형의 말에 민호가 수첩에 꽃집의 이름을 적었다.

 

"손가락의 주인을 찾아야 하니 서둘러 볼까?"

 

건형이 민호의 어깨를 툭툭 치며 현관쪽으로 몸을 돌렸다. 현관문 앞엔 어느 틈엔가 들어와 검은색 가디건을 걸친 수아가 거실에 눈길 조차 못 두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민호가 그녀를 보고 서둘러 말했다.

 

"수아 씨. 이제 저희랑 같이 가죠."

"저기……따로 확인을 해 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요."

 

그녀의 말에 건형과 민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수아가 간절한 눈빛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제 남자 친구의 집에 같이 가 주세요. 부탁드려요."

"……남자 친구요? 같이 가 달라고요?"

 

수아의 말에 건형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의 말을 반복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민호가 곤란한 표정으로 건형과 수아를 번갈아 보더니 수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수아 씨. 겁이 나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건 알겠지만요. 저희가 그런 일까지……"

"아뇨. 그런 게 아니예요."

 

수아가 고개를 마구 저으며 민호의 말을 딱 잘랐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내리깔며 조용히 답했다.

 

"아무래도…저 손가락이 제 남자 친구의 손가락 같아요."

 

 

 

급히 경찰차에 오른 건형과 민호, 그리고 수아는 서로 한 마디 말 조차 없었다. 건형은 중요한 이야기를 제 때에 하지 않은 수아의 행동에 화가 난 듯 눈에 불을 켜고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민호는 그런 건형에게 기가 죽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수아는 수아대로 난생 처음 겪는 상황들의 연속에 힘겨워 보였다.

수아가 손가락의 주인이 남자 친구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다름 아닌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때문이었다. 처음 상자를 열었을 땐 두려움과 놀라움에 정신이 없어 쉽사리 깨닫지 못 했던 사실이었다. 그 반지는 수아와 그녀의 연인인 지웅과 맞춘 커플 반지였다. 수아는 자신의 손가락에도 끼워져 있는 똑같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부디 그 손가락의 주인이 지웅의 것이 아니기만을 빌었다. 어느 덧 차가 아파트 정문을 벗어나 큰길로 들어서자 건형은 크게 숨을 들이내쉬며 수아에게 물었다.

 

"남자 친구 집이 어디라고요?"

"'살기 좋은 아파트'요."

"이름 짓는 센스 하고는…."

 

수아의 대답에 가볍게 툴툴거린 건형이 빠르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건형과 민호가 수아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 약 한 시간이 지난 8시 30분이었다. '살기 좋은 아파트'의 전체적인 모습은 그야말로 '살기 좋아' 보였다. 색색의 아기자기한 놀이터와 가볍게 얘기 나누기 적당해 보이는 쉼터, 곧게 뻗은 나무들이 늘어선 화단, 여름엔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댈 분수대까지 갖춘 아파트 속 작은 공원이 장난감으로 만든 것마냥 아기자기했다. 그들이 이 아파트를 찾아 온 이유가 무색해질 정도로 아파트는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공원 옆 주차장에 차를 대자마자 차에서 내린 수아가 아파트 단지를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건형과 민호가 부지런히 그 뒤를 이었다.

 

《…어후. 누구세요?》

 

스피커 너머로 졸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아가 다급하게 스피커에 대고 외치다시피 말했다.

 

"나야, 수아! 문 좀 열어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관문이 열렸다.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부시시한 머리카락과 팅팅 부어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눈이 안쓰러워 보이는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아를 맞이했다.

 

"아침부터 웬일이야?"

"지웅 오빠 안에 있어?"

"지웅이? 어제 안 들어 왔는데? 난 너랑 같이 있는 줄 알았는데…?"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수아를 바라보다 문득 그녀의 뒤에 서 있는 건형과 민호를 발견하고는 급격히 경직됐다. 수아는 그의 말을 듣고는 휘청거리다 간신히 벽을 짚고 섰다. 건형이 수염을 긁적이다가 남자를 향해 간단히 고개를 까딱거리곤 말을 이었다.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박정우라고 합니다만…그런데 누구시죠?"

"이 분들 형사셔. 어제 지웅 오빠 어디 간다고 말도 없었어?"

"아무 말도 안 했어. 나도 어제 약속이 있어서 늦게 들어 오느라 지웅이 신경은 못 썼지."

 

남자는 아침부터 이유도 모른 채 질문 공세를 받는 것이 당혹스러워 벙찐 얼굴로 대답했다. 수아는 충격을 받은 듯 멍한 얼굴로 건형과 민호를 쳐다 봤다. 민호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죄송하지만, 수사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손가락의 지문 감식 결과, 손가락의 주인은 '강지웅'. 즉, 예상대로 수아의 남자친구로 밝혀졌다. 결과를 전해 듣게 된 수아와 지웅의 친한 친구인 정우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중 수아는 극심한 심경 변화를 보였는데 처음 결과를 듣고는 정신 없이 눈물을 쏟다가 시간이 지나자 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았다. 이후 수아는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범인을 잡아내기로 결심을 내린 듯 단호한 표정으로 사건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런 수아의 결심에 건형과 민호는 몹시 반가운 기색으로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건형은 수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한켠에 자리를 잡고, 민호 역시 정우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증거 자료를 모으기 위해 나서기로 했다.

 

"음료수? 아니면 물 드시겠습니까?"

"물 한 컵만 주세요."

 

건형이 종이컵에 생수를 따라 수아의 앞에 놓아주자 그녀는 순식간에 한 컵을 들이마셨다. 건형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수아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지웅씨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입니까?"

"…이틀 전일거예요. 사실 그 날, 지웅 오빠와 싸우게 됐어요. 며칠 전 친구가 오빠가 다른 여자와 만나는 걸 봤대요. 오빠는 친구 사이라고 했지만 제 친구 말로는 서로 키스까지 하고 껴안고… 난리가 아니었대요."

"흠… 바람을 피웠다, 이건가요?"

"상황이 그랬죠. 어쨌든 그 일로 말싸움을 하다가 서로 격해져서 오빠가………절 때렸어요. 얼굴을 때리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하여튼 주먹을 휘둘렀죠. 그래서 전 그 길로 집으로 도망치다시피 와 버렸고…그게 오빠를 본 마지막이예요."

 

건형은 빠르게 수아의 말을 정리해 타이핑을 했다. 수아는 씁쓸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혹시 수아씨를 스토킹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스토킹이요?"

 

수아는 건형의 질문에 당황해하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자신에게 스토커가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눈치였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 직업이 모델이예요. 그러다보니 팬이라고 하기엔 조금 거창하지만, 가끔 오늘처럼 선물을 집 앞에 두고 가시는 분이나 택배로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아…"

"뭐죠?"

 

수아가 애매한 표정으로 말을 마치자 건형이 수상하다는 듯 수아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반문했다.

 

"……그 장미 꽃다발이요. 그 꽃다발 한, 한 달쯤 됐으려나… 매일 아침마다 놓여져 있었어요. 절 많이 좋아해 주시는 분인가보다 했는데 설마 스토커…!?"

"매일 아침 장미 꽃다발을 놓고 갔다고요? 한 달이나 됐습니까!!"

 

건형의 외침에 가까운 질문에수아가 움찔하며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건형이 셔츠의 단추를 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놓고 가는 걸 직접 본 적은 없었구요?"

"네, 제가 보통 아침 6시 20분 쯤에는 항상 조깅을 하러 나가거든요. 나갈 때 보면 항상 현관문 앞에 장미 꽃다발이 놓여 있었어요."

"수아 씨의 행동 패턴을 알고 있는 모양이군요. 외출 했을 때, 수상한 자가 근처에서 서성인다던가 따라다니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까?"

 

건형의 질문에 수아가 고민하는 듯 고개를 수그린 채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그런 느낌은 한 번도 못 느꼈었어요."

"좋아요, 알겠습니다. 전에 받았던 꽃다발은 다 어떻게 하셨죠?"

"그건 꽃만 따로 정리해서 꽃병에 모아놨어요. …시든 건 버리구요."

"꽃다발은 항상 같은 것이었습니까?"

"네. 항상 빨간 장미 꽃다발이었죠."

 

 

정우에게 간단한 질문들을 하고 난 뒤, 수아의 아파트 경비실에서 엘리베이터 CCTV 촬영 테이프를 구해 온 민호는 수아의 얘기대로 이른 오전 시간대에 초점을 맞춰 꽃다발을 든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수아와의 이야기를 끝낸 건형도 민호와 나란히 CCTV 촬영 화면을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 이 사람!"

 

한참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건형이 손가락을 탁 튕기며 외쳤다. 오전 3시경, 한 남자가 꽃다발을 든 채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화면에 잡혀 있었다. 민호가 바르게 멈춤 버튼을 누른 뒤 얼굴을 보기 위해 화면을 조정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던 둘은 곧 실망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망할 놈."

 

건형이 내뱉듯 중얼거렸다. 화면 속 남자는 철저하게도 가면을 쓴 채였다. 하얀 얼굴에 비명을 지르는 모습인 '스크림' 영화 속의 바로 그 가면이었다. 괴상한 가면을 쓰고 꽃다발을 든 남자의 모습은 마치 몰래카메라라도 찍는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저 놈은 저러고 좋아하는 여자 만나러 가나."

"뭐……나름, 신경은 쓰는 것 같네요."

 

민호의 말대로 화면 속 남자는 엘리베이터의 층 수 버튼을 누르고는 벽면의 커다란 거울 앞에서 가면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모습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다른 날짜의 CCTV 화면 속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손에는 장미 꽃다발을 들고 스크림 가면을 쓴 채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같은 장면을 계속해서 되돌려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 마저 들 정도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달 가량의 테이프를 전부 살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는 놀라울 정도의 일관성으로 한결 같은 모습이었다.

 

"에이, 젠장. 결국 건질 만한 것도 없구만."

 

건형이 리모콘을 집어 던지며 의자 깊숙히 몸을 묻었다. 민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너무 쉬워도 재미 없잖아요."

"그럼, 남은 건 그 꽃집인가."



------------------------------------------------------------------------------

음, 젠장 'ㅁ'......

이벤트 참가하기 위해서 써놨던 건데.....

이틀 전에 갑자기 컴퓨터가 맛이 가 버려서 어제 수리 보내 오늘 돌아왔네요  ㅠㅠㅠ...

속상합니다......orz....

왜 하필 업로드 하려는 날 맛이 가 버렸는지!!!

뭐, 다음을 노려야겠죠 ㅠㅠㅠㅠㅠㅠ 써놓은게 아까워서 나눠서 올려보려고 합니다;ㅂ;...

어색한 문장이나 오타, 그리고 지적할 만한 부분은 거침없이 지적해주셔요!
읽어주신 분 모두 감사합니다~








Comment '2'
  • ?
    알아야될때 2009.08.11 17:43
    제가 읽고 느낀건 재미있다는 거네요 ㅎㅎ

    그리고 몇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동기 설명이 부족해서 '어? 갑자기 왜이러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물의 내면까지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시점이 아니여서 인물의 행동에 대한 동기같은 것이 확실히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인물묘사를 통해서라던지.. 뭐 방법은 많죠

    아무튼 다음 회 기대할께요 ~!
  • 21세기사람* 2009.08.11 18:09
    #알아야될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게다가 재밌으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ㅎ.ㅎ

    지적해 주신 부분에 유의해서 글을 수정해볼게요! 일단 마무리를 다 짓고 나서요^^

    수정한 다음 읽어보시고 재평가 해주신다면 그저 굽신굽신(_ _)

포인트 안내 - 글 작성: x / 댓글 작성: 1

List of Articles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그외 [이벤트 발표] 꼭 봐주시길 바랍니다 4 YR·IS 08.12 2809
공지 그외 [이벤트종료] 상상소설 게시판 회생 이벤트 23 YR·IS 07.24 3931
공지 그외 [공지] 투데이 베스트 시스템 YR·IS 03.01 3247
공지 그외 [공지] 주의사항 필독하세요!! 1 YR·IS 03.01 3339
66 게임 [게임판타지]레전드[L.O]온라인 ○-1 -○ 2 Nero 09.03 2740
65 판타지 Hunt -1- 고성능 09.02 1460
64 그외 [단편]메리크리스마스 1 베르아일 08.30 1458
63 게임 나는 먼치킨이다. Act3 - 건망증 1 새벽녘 08.28 1485
62 퓨전 제목아직< -1 부 - 2 Mei_*Sia 08.26 1576
61 그외 [시]가장 아름다웠던. 그러나 다른이에겐 더러웠던 이야기. 사이드이펙트 08.22 1456
60 그외 강과 구름의 사랑이야기 2 인피니티찰스 08.19 1764
59 그외 [시,수필] 연인이여. 흩날리는 벚꽃처럼. 사이드이펙트 08.11 1806
» 그외 얼굴 없는 연인_ (1) [이벤트였었으나ㅠ.ㅠ] 2 21세기사람* 08.11 1740
57 그외 [이벤트] 이름 2 루크z 08.11 1869
56 판타지 [이벤트] 항상 찾아오는 밤 1 알아야될때 08.10 1552
55 판타지 나선의 사선 - 무녀와 위기의 소년 -1- 사이드이펙트 08.09 1758
54 그외 [이벤트] 7월에 어느 날.. 4 인피니티찰스 08.08 1593
53 그외 헐랭구스러운 막장만화 1탄 4 헐랭구 08.05 2319
52 판타지 베스트 오브 마스터 - 프롤로그 1 제노 08.03 169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