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남북정상회담 뒷얘기
(서울=연합뉴스) 성기홍 기자 =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4일 남북정상회담에서 정상선언 합의문을 도출하기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적잖이 '기싸움'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취재단이 평양에서 다 전하지 못한 뒷얘기들을 정리했다.
= "이러면 점심먹고 짐싸고 가야 될지도 모르겠다" =
0...노 대통령은 4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가진 대국민보고회에서 "처음 오전(회담)에는 좀 힘이 들었다"고 전날 정상회담 1차 회의의 어려웠던 분위기를 전했다.
김 위원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소극적인 태도로 임했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고, 김 위원장이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남측의 문제의식이나 `개혁' `개방' 주장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이렇게 하면 점심먹고 짐싸고 가야될 지도 모르겠다"고 `농반진반'으로 김 위원장에게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색한 것은 아니고 웃으면서 얘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으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마치 지난 2000년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대학가의 인공기 게양 처벌 문제를 거론하고 불만을 표출하며 "대통령께서 서울 떠나올 때 텔레비를 보니 만남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하셨는데, 이제 우리가 상봉했고 인민들 환영도 받으셨으니 돌아가시는 것이 어떠냐"라고 얘기한 것과 비슷하다.
전날 노 대통령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면담했을 때 북측의 분위기는 싸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남 위원장이 역시 개혁, 개방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교과서적으로 북측의 기존 입장을 50분 동안 설명했고,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노 대통령이 난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도 이에 맞서 30분 동안 남측의 입장을 얘기하며 적극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 입장이 팽팽히 맞섰던 것.
이날 분위기가 좋지 않자 노 대통령은 회담 성과를 걱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참모진들이 "원래 그렇다. 기선제압용이니 개의치 말라. 맞불은 잘한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는 후문이다.
= 옥류관 오찬 발언이 반전 계기 =
0...회담이 반전을 이루는 데는 노 대통령의 옥류관 오찬 발언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오전 회담을 마치고 남측 방북단을 옥류관으로 초청, 오찬을 베푼 자리에서 북한 체제를 존중하는 `역지사지'의 자세를 강조하면서 "불신의 벽을 좀 더 허물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개혁과 개방이라는 용어에 대한 불신감과 거부감을 회담에서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개성공단의 성과를 얘기할 때 북측 체제를 존중하는 용의주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발언은 현장에 있던 북측 관계자들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에 즉각 보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 고위참모들은 노 대통령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김 위원장에게 보고했다는 후문이다.
천호선 대변인도 5일 정례브리핑에서 "오전 회담에서 노 대통령의 입장을 듣고 김정일 위원장도 점심때 참모들의 의견을 들었던 것으로 안다"며 "대통령의 설명과 참모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김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회담에 임하게 된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남측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한 발언은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을 향한 전략적 메시지였던 셈이다. 그리고 다시 속개된 오후 회담은 훨씬 분위기가 밝아졌다.
= 4.25 문화회관앞 환영식은 우천 고려 =
0...노 대통령의 방북 첫날 북측의 공식환영식 장소는 당초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으로 예상됐으나, 환영식 장소가 인민문화궁전으로 바뀌었고, 다시 막판에 4.25 문화회관앞 광장으로 결정됐다.
북측이 4.25 문화회관앞 광장을 최종적으로 식장으로 결정한 것은 비가 오는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한 당일 오전에는 구름이 잔뜩 끼었고, 전날에도 비가 내렸기 때문에 행여 행사 직전 비가 내리는 돌발상황에 대비, 4.25 문화회관앞에서 환영식을 하는 쪽을 북측은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4.25 문화회관은 모두 6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을 갖고 있다.
북쪽 관계자는 "남쪽 대통령의 방문은 국가적 행사이기 때문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 "개성공단에 삼성 등 대기업이 들어와야" =
0...북한의 한 정부측 경제분야 관료는 2일 목란관에서 열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주최 환영만찬에서 "이번 수행단 명단에 큰 기업 대표들이 포함돼 있던데 어떤 보따리를 들고 왔는지 알고 있느냐"고 관심을 표했다.
그는 "남측 기자라면 정몽구 회장이나 구본무 회장 등과도 가깝지 않느냐. 혹시 그들이 무슨 사업을 북측에서 하려는지 알면 가르쳐 달라"고도 말하면서 현재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협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경협의 틀을 획기적으로 바꿀만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
그는 "저임금에 기초한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니라 경협에 상징적으로 작용할 만한 고부가가치 첨단 공장을 설립해 달라"며 "(고부가가치 공장이 들어오면) 그것으로 우리가 핵무기를 만들겠느냐"며 쓴 웃음을 짓기도 했다.
발언은 현재의 경협 수준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그는 "그동안 남측의 경협이 (큰 진전 없이) 말로만 이뤄지지 않았느냐"며 은근히 실망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다른 북측 관계자는 "개성공단에 삼성같은 대기업이 들어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책공대 공식 참관지에서는 특별수행원 중 한명이 컴퓨터로 미국 영화를 보며 회화 공부를 하고 있는 한 학생에게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소개하자 이 학생은 "삼성전자를 잘 알고 있다"고 인사했다.
= 불 밝힌 평양 밤거리.."달라졌다" =
0...평양을 수 차례 방북한 특별수행원 인사들은 평양시내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반응들이었다.
지난 겨울 북한을 방문했던 한 수행원은 "그때보다 거리가 한결 깨끗해지고 밝아졌다. 특히 그때에는 연료인지, 식량인지를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한결 말쑥해진 것 같다. 정상회담에 대비해 정리한 측면도 있겠지만 전력사정 등이 한결 나아진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남북정상 회담기간 평양 시내 천리마 거리 등에는 가로수마다 전등을 10여개씩 달아 밤길을 밝혀 놓아 눈길을 끌었고, 평양의 주요 기념물마다 저녁에 조명을 환하게 켜두기도 했다.
북측 안내원은 "항상 전등을 매달아 놓은 것은 아니고, 큰 명절 때나 행사가 있으면 매달아 둔다"며 "전력난이 완전히 극복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부터는 좋아졌고, 요즘 평양시내에 야경을 즐기러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 방북했던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그때는 가로등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는 가로등이 많이 켜져 있었다"며 "평양 분위기가 많이 밝아지고 깨끗하게 단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지난 5월에 왔을 때는 회색이던 건물들이 많이 색칠이 됐다. 평양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말을 곁에 듣던 북측 다른 안내원은 "올해가 무슨 해인지 모르느냐"라고 반문한 뒤 "올해는 공화국 정부가 인민 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을 첫째가는 과업으로 정해놓고 우선하는 해"라며 "정치, 군사 강국이 됐으니 이제 경제강국으로 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 北, 김정일 위원장 동정 일체 함구 =
0...남북정상회담 기간 북측 관계자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동선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로 일관했다.
공동취재단이 평양에 도착한 첫날 고려호텔 프레스센터에는 북측이 제공한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로무현 대통령 일행의 평양방문 일정'이라는 제목으로 자료가 제공됐지만, 이 자료에는 김정일 위원장 일정은 일체 없었다.
공동취재단의 안내 역할을 맡은 북측 관계자들도 김 위원장에 관련된 사안을 물으면 일체 입을 닫았고, 동문서답하기가 일쑤였다. 화제를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첫날 공동취재단을 태운 버스가 평양입구에 다다랐을 무렵 기자들은 당초 환영식 장소로 예상한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에 버스가 설 것으로 생각하고 준비를 했지만, 버스는 멈춰서지 않고 그대로 평양 시내로 내달렸다.
북측 안내원 지시에 따라 평양 시내로 계속 달린 버스는 대동강을 건너 창광거리, 보통문, 만수대 의사당, 개선문을 지나쳤다. 기자들은 "어디로 가느냐"고 계속 물었지만 북측 안내원은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4.25 문화회관앞 광장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도 "국방위원장이 오시는 모양이죠"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답변을 않고 외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안내원은 김 위원장의 등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가슴이 벅차 말을 할 수가 없다"고만 말하기도 했다.
= 평양 시민들의 여전한 부시, 미국 불신 =
0...북한 주민들에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국의 정책에 대한 불신감은 여전히 뿌리깊었다.
공동취재단 기자들을 안내한 북측 안내원들은 최근 부시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야만정권(brutal regime)'이라고 지칭한 것을 비판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종전선언의 공동서명까지 얘기하는 등 유화적으로 나오다가 이같은 발언을 한 배경에 대해 궁금증을 표시하면서도 "미국이 정말 바뀌기는 바뀐 것이냐"는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안내원은 "과거에는 '악의 축'이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야만인이라고 했다는데, 정말 우리가 야만인으로 보이냐"고 반문하면서 "부시 대통령은 오펙(OPEC)과 에이펙(APEC)도 구분을 못해 발음이 왔가갔다 헷갈려 하는데 한나라의 대통령이 그것도 제대로 발음을 못하느냐"고 조롱하듯 말했다.
공동취재단을 태운 버스가 평양에 들어서 대동강을 건널때 지난 1968년 나포된 미국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기자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한 안내원은 "저게 바로 푸에블로호인데, 제너럴 셔먼호를 격침시켰던 자리에 갔다 놨다. 미국이 수십억원을 준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 필요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다른 북측 관계자는 "1994년에 카터가 왔을 때 수령님이 서해갑문으로 데려갔다. 수령님께서 자꾸 카터 옷깃을 잡아당겼다. 카터가 '자꾸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수령님께서는 '가만 있는 사람 이렇게 건드리면 좋겠느냐'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는 잘 지내고 싶으니까 자꾸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는 내용의 과거 일화를 소개하며 북측의 대미 인식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면서 "6자 회담이 왜 잘 되는 줄 아느냐"고 반문한뒤 "우리가 핵실험을 했기 때문이다. 서로 동등해야 대화가 되는 것 아닌가. 조미관계가 지금처럼 되어가는 것은 장군님께서 위대한 결단을 내리셨기 때문이다. 이라크와 아프간이 왜 저렇게 당하느냐. 힘이 없기 때문 아니냐"고 말했다.
= 평양 시민들 "아리랑 공연 출연은 자랑이고 명예" =
0...노무현 대통령이 3일 저녁 대동강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관람한 `아리랑 공연'에 대해 "공화국의 자랑"이라는게 북측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얘기였다.
북측 안내원은 노 대통령의 아리랑 공연을 둘러싼 남쪽의 논란에 대해 "우리가 우리를 자랑하는데 어떠냐. 60년 역사를 정리한 것이다. 배 아픈 사람들이나 싫은 소리를 한다"며 "아리랑 공연에 출연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학생들이 자원을 하며 커서도 명예가 된다"고 말했다.
고려호텔의 한 여성 종업원은 아리랑 공연의 학생 동원에 대해 "인민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말한뒤 "나도 어릴 때 참여했고, 여학생들은 체조를 해야 몸매가 예뻐지고 키가 큰다. 누구나 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참여하면 돈을 받느냐'는 질문에 "돈이라니요"라고 반문하며 "인민으로서 당연히 봉사해야지요"라고 황당해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평양 분위기는 1차 때보다는 차분 =
0...평양 시민들은 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열렬히 환영하고, 북측 언론도 정상회담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지난 2000년 정상회담 때보다는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공동취재단을 안내한 북측 관계자는 "아무래도 1차때에 비해 덜하다. 우리도 사람인데...남측은 그렇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그때와 많이 다르다. 그 때는 정신 없었다. 많이 여유가 생겼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안내원은 "내용이 중요하지 모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측 사람들은 이번 수뇌회담 얘기들을 많이 하느냐"고 남쪽 분위기를 물어보기도 했다.
평양 체류 마지막날 한 북측 관계자는 정상회담 선언문 사실을 전해듣고 "이제 정말 바빠지게 생겼다. 일이 엄청 많지 않겠는가. 기자 선생들도 서울 내려가면 일이 많아질 것 같다. 나도 국가사업에 정신없어지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러면서 "같이 경제발전을 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래도 함부로 우리더러 개혁해라, 개방하라 그러면 안되는 거지"라며 남측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모양새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일본도 우리 땅에 들어와서 사업을 하기위해 안달이 나있다"고 말했다.
= "김 위원장이 뭡네까"..北, 송출 방송 테이프 검열 =
0...평양 프레스센터가 차려진 고려호텔에는 위성을 통해 서울 프레스센터로 송출될 방송 화면과 원고들을 사전검열하기 위한 북측 관계자들이 상주했다.
영상 화면은 서울로 송출되기 전에 반드시 이들의 검열을 거쳤다. 방송기자들의 생방송이나 리포트가 있을 때는 사전에 원고를 달라고 요청했고 원고를 미리 받지 못한 경우에는 생방송 현장이나 리포트를 녹음하는 현장에 입회해서 내용을 체크했다.
실제 북측 관계자들이 문제를 제기해서 영상을 보내지 못 하거나 코멘트를 수정한 일이 두 차례 있었다.
방북 첫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노 대통령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을 때 김 위원장이 수행원을 불러 다소 짜증스런 표정으로 환영 시민들 쪽을 가리키며 손짓을 하는 장면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또 한 방송기자가 원고를 녹음하면서 "김 위원장"이라는 표현을 쓰자 "김 위원장이라고 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인지 김영남 상임위원장인지 혼동할 우려가 있다"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또는 김정일 위원장으로 하라"고 요청해 녹음을 수정한 일도 있었다.
공동취재단 기자들이 특별수행원 공식참관지 등 취재를 나갈 때는 반드시 북측 안내원들이 붙어서 안내를 했고, 정해진 취재 장소 이외의 장소로는 마음대로 외출을 할 수 없었다. 숙소인 고려호텔 밖을 벗어날 수 없었던 셈이다.
특별수행원중 한명은 고려호텔에 머물고 있는 남측 기자들과 식사를 하려 했으나 특별수행원도 숙소인 보통강호텔에서 나오지 못했다.
(서울=연합뉴스) 성기홍 기자 =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4일 남북정상회담에서 정상선언 합의문을 도출하기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적잖이 '기싸움'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취재단이 평양에서 다 전하지 못한 뒷얘기들을 정리했다.
= "이러면 점심먹고 짐싸고 가야 될지도 모르겠다" =
0...노 대통령은 4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가진 대국민보고회에서 "처음 오전(회담)에는 좀 힘이 들었다"고 전날 정상회담 1차 회의의 어려웠던 분위기를 전했다.
김 위원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소극적인 태도로 임했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고, 김 위원장이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남측의 문제의식이나 `개혁' `개방' 주장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이렇게 하면 점심먹고 짐싸고 가야될 지도 모르겠다"고 `농반진반'으로 김 위원장에게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색한 것은 아니고 웃으면서 얘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으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마치 지난 2000년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대학가의 인공기 게양 처벌 문제를 거론하고 불만을 표출하며 "대통령께서 서울 떠나올 때 텔레비를 보니 만남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하셨는데, 이제 우리가 상봉했고 인민들 환영도 받으셨으니 돌아가시는 것이 어떠냐"라고 얘기한 것과 비슷하다.
전날 노 대통령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면담했을 때 북측의 분위기는 싸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남 위원장이 역시 개혁, 개방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교과서적으로 북측의 기존 입장을 50분 동안 설명했고,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노 대통령이 난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도 이에 맞서 30분 동안 남측의 입장을 얘기하며 적극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 입장이 팽팽히 맞섰던 것.
이날 분위기가 좋지 않자 노 대통령은 회담 성과를 걱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참모진들이 "원래 그렇다. 기선제압용이니 개의치 말라. 맞불은 잘한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는 후문이다.
= 옥류관 오찬 발언이 반전 계기 =
0...회담이 반전을 이루는 데는 노 대통령의 옥류관 오찬 발언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오전 회담을 마치고 남측 방북단을 옥류관으로 초청, 오찬을 베푼 자리에서 북한 체제를 존중하는 `역지사지'의 자세를 강조하면서 "불신의 벽을 좀 더 허물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개혁과 개방이라는 용어에 대한 불신감과 거부감을 회담에서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개성공단의 성과를 얘기할 때 북측 체제를 존중하는 용의주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발언은 현장에 있던 북측 관계자들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에 즉각 보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 고위참모들은 노 대통령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김 위원장에게 보고했다는 후문이다.
천호선 대변인도 5일 정례브리핑에서 "오전 회담에서 노 대통령의 입장을 듣고 김정일 위원장도 점심때 참모들의 의견을 들었던 것으로 안다"며 "대통령의 설명과 참모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김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회담에 임하게 된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남측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한 발언은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을 향한 전략적 메시지였던 셈이다. 그리고 다시 속개된 오후 회담은 훨씬 분위기가 밝아졌다.
= 4.25 문화회관앞 환영식은 우천 고려 =
0...노 대통령의 방북 첫날 북측의 공식환영식 장소는 당초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으로 예상됐으나, 환영식 장소가 인민문화궁전으로 바뀌었고, 다시 막판에 4.25 문화회관앞 광장으로 결정됐다.
북측이 4.25 문화회관앞 광장을 최종적으로 식장으로 결정한 것은 비가 오는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한 당일 오전에는 구름이 잔뜩 끼었고, 전날에도 비가 내렸기 때문에 행여 행사 직전 비가 내리는 돌발상황에 대비, 4.25 문화회관앞에서 환영식을 하는 쪽을 북측은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4.25 문화회관은 모두 6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을 갖고 있다.
북쪽 관계자는 "남쪽 대통령의 방문은 국가적 행사이기 때문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 "개성공단에 삼성 등 대기업이 들어와야" =
0...북한의 한 정부측 경제분야 관료는 2일 목란관에서 열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주최 환영만찬에서 "이번 수행단 명단에 큰 기업 대표들이 포함돼 있던데 어떤 보따리를 들고 왔는지 알고 있느냐"고 관심을 표했다.
그는 "남측 기자라면 정몽구 회장이나 구본무 회장 등과도 가깝지 않느냐. 혹시 그들이 무슨 사업을 북측에서 하려는지 알면 가르쳐 달라"고도 말하면서 현재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협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경협의 틀을 획기적으로 바꿀만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
그는 "저임금에 기초한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니라 경협에 상징적으로 작용할 만한 고부가가치 첨단 공장을 설립해 달라"며 "(고부가가치 공장이 들어오면) 그것으로 우리가 핵무기를 만들겠느냐"며 쓴 웃음을 짓기도 했다.
발언은 현재의 경협 수준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그는 "그동안 남측의 경협이 (큰 진전 없이) 말로만 이뤄지지 않았느냐"며 은근히 실망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다른 북측 관계자는 "개성공단에 삼성같은 대기업이 들어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책공대 공식 참관지에서는 특별수행원 중 한명이 컴퓨터로 미국 영화를 보며 회화 공부를 하고 있는 한 학생에게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소개하자 이 학생은 "삼성전자를 잘 알고 있다"고 인사했다.
= 불 밝힌 평양 밤거리.."달라졌다" =
0...평양을 수 차례 방북한 특별수행원 인사들은 평양시내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반응들이었다.
지난 겨울 북한을 방문했던 한 수행원은 "그때보다 거리가 한결 깨끗해지고 밝아졌다. 특히 그때에는 연료인지, 식량인지를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한결 말쑥해진 것 같다. 정상회담에 대비해 정리한 측면도 있겠지만 전력사정 등이 한결 나아진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남북정상 회담기간 평양 시내 천리마 거리 등에는 가로수마다 전등을 10여개씩 달아 밤길을 밝혀 놓아 눈길을 끌었고, 평양의 주요 기념물마다 저녁에 조명을 환하게 켜두기도 했다.
북측 안내원은 "항상 전등을 매달아 놓은 것은 아니고, 큰 명절 때나 행사가 있으면 매달아 둔다"며 "전력난이 완전히 극복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부터는 좋아졌고, 요즘 평양시내에 야경을 즐기러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 방북했던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그때는 가로등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는 가로등이 많이 켜져 있었다"며 "평양 분위기가 많이 밝아지고 깨끗하게 단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지난 5월에 왔을 때는 회색이던 건물들이 많이 색칠이 됐다. 평양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말을 곁에 듣던 북측 다른 안내원은 "올해가 무슨 해인지 모르느냐"라고 반문한 뒤 "올해는 공화국 정부가 인민 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을 첫째가는 과업으로 정해놓고 우선하는 해"라며 "정치, 군사 강국이 됐으니 이제 경제강국으로 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 北, 김정일 위원장 동정 일체 함구 =
0...남북정상회담 기간 북측 관계자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동선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로 일관했다.
공동취재단이 평양에 도착한 첫날 고려호텔 프레스센터에는 북측이 제공한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로무현 대통령 일행의 평양방문 일정'이라는 제목으로 자료가 제공됐지만, 이 자료에는 김정일 위원장 일정은 일체 없었다.
공동취재단의 안내 역할을 맡은 북측 관계자들도 김 위원장에 관련된 사안을 물으면 일체 입을 닫았고, 동문서답하기가 일쑤였다. 화제를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첫날 공동취재단을 태운 버스가 평양입구에 다다랐을 무렵 기자들은 당초 환영식 장소로 예상한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에 버스가 설 것으로 생각하고 준비를 했지만, 버스는 멈춰서지 않고 그대로 평양 시내로 내달렸다.
북측 안내원 지시에 따라 평양 시내로 계속 달린 버스는 대동강을 건너 창광거리, 보통문, 만수대 의사당, 개선문을 지나쳤다. 기자들은 "어디로 가느냐"고 계속 물었지만 북측 안내원은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4.25 문화회관앞 광장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도 "국방위원장이 오시는 모양이죠"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답변을 않고 외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안내원은 김 위원장의 등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가슴이 벅차 말을 할 수가 없다"고만 말하기도 했다.
= 평양 시민들의 여전한 부시, 미국 불신 =
0...북한 주민들에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국의 정책에 대한 불신감은 여전히 뿌리깊었다.
공동취재단 기자들을 안내한 북측 안내원들은 최근 부시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야만정권(brutal regime)'이라고 지칭한 것을 비판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종전선언의 공동서명까지 얘기하는 등 유화적으로 나오다가 이같은 발언을 한 배경에 대해 궁금증을 표시하면서도 "미국이 정말 바뀌기는 바뀐 것이냐"는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안내원은 "과거에는 '악의 축'이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야만인이라고 했다는데, 정말 우리가 야만인으로 보이냐"고 반문하면서 "부시 대통령은 오펙(OPEC)과 에이펙(APEC)도 구분을 못해 발음이 왔가갔다 헷갈려 하는데 한나라의 대통령이 그것도 제대로 발음을 못하느냐"고 조롱하듯 말했다.
공동취재단을 태운 버스가 평양에 들어서 대동강을 건널때 지난 1968년 나포된 미국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기자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한 안내원은 "저게 바로 푸에블로호인데, 제너럴 셔먼호를 격침시켰던 자리에 갔다 놨다. 미국이 수십억원을 준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 필요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다른 북측 관계자는 "1994년에 카터가 왔을 때 수령님이 서해갑문으로 데려갔다. 수령님께서 자꾸 카터 옷깃을 잡아당겼다. 카터가 '자꾸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수령님께서는 '가만 있는 사람 이렇게 건드리면 좋겠느냐'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는 잘 지내고 싶으니까 자꾸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는 내용의 과거 일화를 소개하며 북측의 대미 인식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면서 "6자 회담이 왜 잘 되는 줄 아느냐"고 반문한뒤 "우리가 핵실험을 했기 때문이다. 서로 동등해야 대화가 되는 것 아닌가. 조미관계가 지금처럼 되어가는 것은 장군님께서 위대한 결단을 내리셨기 때문이다. 이라크와 아프간이 왜 저렇게 당하느냐. 힘이 없기 때문 아니냐"고 말했다.
= 평양 시민들 "아리랑 공연 출연은 자랑이고 명예" =
0...노무현 대통령이 3일 저녁 대동강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관람한 `아리랑 공연'에 대해 "공화국의 자랑"이라는게 북측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얘기였다.
북측 안내원은 노 대통령의 아리랑 공연을 둘러싼 남쪽의 논란에 대해 "우리가 우리를 자랑하는데 어떠냐. 60년 역사를 정리한 것이다. 배 아픈 사람들이나 싫은 소리를 한다"며 "아리랑 공연에 출연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학생들이 자원을 하며 커서도 명예가 된다"고 말했다.
고려호텔의 한 여성 종업원은 아리랑 공연의 학생 동원에 대해 "인민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말한뒤 "나도 어릴 때 참여했고, 여학생들은 체조를 해야 몸매가 예뻐지고 키가 큰다. 누구나 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참여하면 돈을 받느냐'는 질문에 "돈이라니요"라고 반문하며 "인민으로서 당연히 봉사해야지요"라고 황당해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평양 분위기는 1차 때보다는 차분 =
0...평양 시민들은 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열렬히 환영하고, 북측 언론도 정상회담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지난 2000년 정상회담 때보다는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공동취재단을 안내한 북측 관계자는 "아무래도 1차때에 비해 덜하다. 우리도 사람인데...남측은 그렇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그때와 많이 다르다. 그 때는 정신 없었다. 많이 여유가 생겼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안내원은 "내용이 중요하지 모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측 사람들은 이번 수뇌회담 얘기들을 많이 하느냐"고 남쪽 분위기를 물어보기도 했다.
평양 체류 마지막날 한 북측 관계자는 정상회담 선언문 사실을 전해듣고 "이제 정말 바빠지게 생겼다. 일이 엄청 많지 않겠는가. 기자 선생들도 서울 내려가면 일이 많아질 것 같다. 나도 국가사업에 정신없어지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러면서 "같이 경제발전을 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래도 함부로 우리더러 개혁해라, 개방하라 그러면 안되는 거지"라며 남측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모양새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일본도 우리 땅에 들어와서 사업을 하기위해 안달이 나있다"고 말했다.
= "김 위원장이 뭡네까"..北, 송출 방송 테이프 검열 =
0...평양 프레스센터가 차려진 고려호텔에는 위성을 통해 서울 프레스센터로 송출될 방송 화면과 원고들을 사전검열하기 위한 북측 관계자들이 상주했다.
영상 화면은 서울로 송출되기 전에 반드시 이들의 검열을 거쳤다. 방송기자들의 생방송이나 리포트가 있을 때는 사전에 원고를 달라고 요청했고 원고를 미리 받지 못한 경우에는 생방송 현장이나 리포트를 녹음하는 현장에 입회해서 내용을 체크했다.
실제 북측 관계자들이 문제를 제기해서 영상을 보내지 못 하거나 코멘트를 수정한 일이 두 차례 있었다.
방북 첫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노 대통령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을 때 김 위원장이 수행원을 불러 다소 짜증스런 표정으로 환영 시민들 쪽을 가리키며 손짓을 하는 장면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또 한 방송기자가 원고를 녹음하면서 "김 위원장"이라는 표현을 쓰자 "김 위원장이라고 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인지 김영남 상임위원장인지 혼동할 우려가 있다"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또는 김정일 위원장으로 하라"고 요청해 녹음을 수정한 일도 있었다.
공동취재단 기자들이 특별수행원 공식참관지 등 취재를 나갈 때는 반드시 북측 안내원들이 붙어서 안내를 했고, 정해진 취재 장소 이외의 장소로는 마음대로 외출을 할 수 없었다. 숙소인 고려호텔 밖을 벗어날 수 없었던 셈이다.
특별수행원중 한명은 고려호텔에 머물고 있는 남측 기자들과 식사를 하려 했으나 특별수행원도 숙소인 보통강호텔에서 나오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