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희택입니다.
어제 늦은 밤, 흥미로운 방송을 보았습니다. 한 부모의 제보로 공개된 이 이야기는 게임 중독자인 자신의 자녀가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심지어 부모의 목을 조르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던 충격적인 모습을 방송에서 목격하게 된 것이죠.
저는 이 방송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게임 중독자이기 때문에 저러한 반인륜적인 행동까지 하게 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저를 흔들고, 게임이라는 것에 대해서 회의를 가져야 하나 라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죠.
방송을 계속 시청하면서, 게임 중독자인 자녀보다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저에게는 이미 답이 나와있었죠.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
아이가 폭력성을 보였던 상황을 순차적으로 정리하면, 게임 중독자인 자녀가 밤낮 가리지 않고 게임에 하기 때문에 걱정을 했고, 결국 통보 없이 인터넷을 해지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아이가 게임을 못하게 막았던 것이죠.
결국 그 아이는 그 상황에서 계속 인터넷을 연결 시켜달라는 요구를 하지만 부모는 게임을 하는 자녀를 놔둘 수 없어서 버티다가. 결국 욕설과 함께 폭력을 부모에게 행사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 폭력 사태를 발생하게 한 ‘게임’에 대해서 모든 책임 전가를 하는 부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폭력적인 것도,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는 것도 게임이라고 단정지었기 때문이죠.
방송이 후반으로 갈수록 명확해 지는 것은 ‘게임 중독자’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아이가 게임에 빠져든 이유와 폭력성을 보여주는 이유는 ‘게임’이 아닌 과거의 상처를 통한 정신질환에 일종이라는 전문가의 판단이었죠.
알고 보면…
그 아이는 어린 시절, 미혼모였던 엄마에게 버림 받고 친아버지에게로 보내진 다음, 그 친아버지에게도 버림 받아서 장애인 보호 시설에 보내지게 됩니다. 결국 적응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어린 이성은 처참하게 무너져갔고, 학교 또한 동기들을 폭력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교조차 다닐 수 없었던 사회 은둔자가 되어버린 것이죠.
이러한 사회 은둔자는 쉽게 되지도 않고, 해라고 해서 될 수 있는 존재도 아니죠. 상처와 고통으로 세상과의 커뮤니티를 단절시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말을 들어주지 않는 부모”
”혼자서 자녀를 키우기 때문에 바쁜 생활 속에서 관심 가져줄 수 없었던 부모”
방송을 보면서, 저는 부모에게 조금 화가 났습니다.
장시간의 설득으로 아이와 부모는 전문의와 함께 대화를 시도하였지만 결국 대화를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의 대화법이었죠. 제가 본 부모의 대화법은 “우물 안의 개구리” 같았다고 생각하네요. 속내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들만 생각하고, 그것으로 각인시킨 생각을 아들에게 주입시키려는 듯한 대화법에서, 결국 더 이상에 대화가 진행될 수 없는 큰 이유였죠.
“니가 게임을 하니까..”
부모는 자신이 느낀 것만을 전달하고, 아이의 말을 믿어주지 않으니까. 폭력도, 이미 가지고 있는 상처 또한 모르는 부모에게서 아이는 더욱 멀어질 수 밖에 없었죠. 다르게 말하자면 아이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죠.
“믿어주지 않으니까..”
잠시 번 외 이야기를 하자면, 예전에 필자가 적었던 ‘게이머들은 모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걸까? .’ 라는 글을 최근에 올렸는데,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이가 가지고 있는 상처,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부모, 단절된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게임과 함께 소통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아이의 행동으로 보았을 땐, 게임을 통해서 치료되는 것이 아닌 ‘중지’ ‘억제’ 상태가 보다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되네요.
결국 아이는 폭력적인 현상을 과거의 상처에서 미리 표출될 수 있는 분노의 일종이라고 바라볼 수 있고, 그에 따른 품행장애, 우울증 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중지’ 억제’ 시키는 것은 게임이었다는 것이죠. 슬프지만 말입니다.
총체적인 문제점 해결에 앞서서, 사회적 구조에 대한 한마디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회가 급변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인지는 느리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급변한 사회를 보는 선입견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속히 사회중추계층이라고 불리는 ‘어른’들은 발전적인 단계가 아닌 유지 보수적인 단계로써,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임이라고 불리는 여가활동이 우리에게 다가왔던 기간은 불가 10년 남짓, 우리에게는 인생의 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간이지만, 어른들에게는 짧거나 크게 중요하지 않은 시간이라는 거죠.
또한 무의식에 담겨있는 거부감들은 사회적인 선입견으로 받아주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현 사회가 겪고 있는 가슴앓이, 발전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하는 자녀에 대해서 ‘왜’ 라는 의문이 아닌 ‘하지마’ 라는 권유, 강요, 억압적인 행동들이 나오는 이유가 게임이 아닌 다른 이유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은 그러한 상황들이 작았고, 최근 몇 년 전부터 사회적으로 보이고 있기 때문이죠. 즉 문제의 초점을 잘못 잡고 있다는 것이죠.
정상적인 사람이 게임을 하는 것과 사회적으로 은둔, 중독자들이 게임을 하는 것을 동일하게 보는 선입견에 대해서 말하자면, 정상적인 사람이 업무를 끝내고, 술 한잔하는 것과,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마시는 것을 동일하게 보는 것과 무엇이 틀리는지 되묻고 싶네요.
물론 게임 자체에만 빠진 아이들이 있습니다. 게임에 열성을 보이는 아이들을 열정을 꿈에 돌리고자 하는 것보다는 단순히 게임을 막으면, 공부를 하겠지? 라는 단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부모들이 참으로 많기 때문이죠. 그러나 게임이라는 것은 여가활동에 불가하며, 그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방법 혹은 여가활동에 종류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결국, 다른 변수까지 생각하셔야 하고, 길을 안내해줘야만 한다는 점을 잊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부정적인 시각이 낳은 결론
어떤 이는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들에 대해서 비난적인 의견을 말하며, 대표적인 특정 3가지를 지적했는데, ‘자존심이 강하다’ ‘남의 참견, 이야기를 듣고자 하지 않는다’ ‘꿈이나 미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생각해 보지 않고 있지 않나요?.
자존심이 강한 건, 자신의 환경 속에서 자기를 지키려는 보호 본능이지 않을까?
남의 참견, 이야기를 듣고자 하지 않는 건, 대화가 통하지 않거나 신뢰하지 않는 부모(지인)들이 있지 않을까?
꿈이나 미래가 없는 것은 아이에게 꿈이라는 미래라는 것을 찾을 수 있게 혹은 심어주지 못한 부모의 교육 환경에도 문제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은 들지 않는지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단편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배워온 선조의 지식이죠.
아마 세대가 변하고, 여러분들이 ‘어른’이라는 존재가 되겠죠. 그리고 귀여운 자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될 겁니다. 게임이라는 자체를 놀이 문화, 여가활동이라고 인정하는 여러분들께서 자녀가 게임을 하고 있다면 어떤 눈으로 바라보실 건가요? 자녀가 게임 중독으로 인하여 폭력성이 다분해 진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마 여러분들은 지금의 부모님과는 다른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알기 때문이고, 이제 알았기 때문이겠죠. 단순히 일방적인 말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을 전하는 것은 커뮤니티가 아닌 설교나 강요에 불가합니다. 부모들 또한 알아야 할 것이 많고, 많아진 이유는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기 때문이고, 현재가 아닌 다음에 살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아이에게 신뢰감을 주는 든든한 후원자적인 모습이야 말로 아이가 조금 더 바르게 자랄 수 있는 좋은 멘토가 아닐까 생각하네요.
그렇다고, 주위의 탓만 하는 당신도 나쁜 겁니다.
이야기가 자꾸만 길어지는데, 단순히 몇 줄로 끝낼만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죠. 위의 상황은 특별한 케이스에 속하는 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사례는 아니라는 것이죠.
게임 중독이라고 불리는 행동을 어른의 시선으로 풀어보자면, 자신의 일이 아닌 놀이 활동에 전념하고 모습이라는 점이죠. 그로 인하여 활동성 줄어들고, 대인 관계가 좁아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 다수의 어른들을 시선입니다. 즉, 걱정이라는 점이죠. 물론 걱정이라는 감정에서 파생되는 개개인의 성격차이는 다양하겠지만 대부분 감정이 악화되는 순례를 걸어가게 되는데, ‘잔소리’라고 불리는 그 시점을 벗어나고자 하는 회피성 발언, 책임질 수 없는 말들이 자꾸만 자신을 신뢰 받지 못한 자로 만든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게임에 몰입하거나 사냥 타이밍에 있어서, 한 3~5분이 더 필요한 상황이지만 식사를 해라고 요구하는 부모의 입장은 사냥 타이밍이 무엇인지도, 게임을 하다가 왜 바로 나올 수 없는지도 모르시는 것이 대부분이며, 계속된 식사 요구에 회피성 발언, 책임질 수 없는 발언을 하게 되면 결론적으로 부모는 아이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점이죠
5분만… 1분만, 몇 분만이라는 말로써, 누군가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서 자제 아닌 자제를 요청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 순간 게임에 더 집중하고자 하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죠. 그러나 결국 그 말들은 자신이 부모에게 말한 ‘약속’과 같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우리 청소년들이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죠.
그러한 행동들은 결국, 응석받이나 자기 마음대로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며, 하나의 인격보다는 비 성숙된 인격으로 비추어지기 쉽다는 겁니다. 그런 당신께서 과연 부모님에게 신뢰를 받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질까요? 게임에 대해서 예를 들었지만 전반적인 모든 부분에서 그러한 ‘약속’을 어기고 있다고 생각해 보신 적은 없나요?
물론 그러한 약속에 대해서, 강제성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부모가 특정 행동에 대한 요구와 권유, 강조는 당신이 비 성숙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나타낼 때, 더욱 강해진다는 점이라는 거죠.
위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상처나 적응하지 못한 자신의 상처 받은 마음 때문이라는 ‘현실타협’을 하신다면, 당신은 나약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의 사례는 지극히 소수만이 경험하는 것이며, 저랑 상황을 고통과 상처와 비슷하거나 그에 준하는 상처를 받으셨다고 생각하신다면 할말은 없지만, 아마 그렇지 않은 분들이 타인의 상처를 자신에게 감쌓듯,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정리를 하자면,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처음에 언급했던 사례에서도 분명히 자녀의 잘못은 존재합니다. 허나 그 죄의 무거움을 따지고, 흑백 논리로 누구의 잘못이다. 라고 말하는 그 자체부터가 아니라, 이 글을 통하여 제가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서 단 1%라도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이 쌓여나갈 때, 조금 더 편안한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말씀 드려 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끼조,
예를들자면,
오랜만에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바로 그순간 부모님이 공부해라~
하면 하기 싫어지조,
단지 거부감이 든다고 바로 표출하지 않고
참고 참고 참고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때 ,
그때 억압으로 인한 거부감을
한꺼번에 터트리기 때문에,
그게 문재가 될수도 있겠조,
부모의 목을 조르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하려고 하는걸 부모가 시켜고 거부감이 들탠대
하물며 하고있는 게임을 그만해라 하면 더큰 거부감이 들겠조.
아마 목을 조르신 분의 성격이 아주 다혈질이라서
거부감이 들자마자 바로 짜증이라도 부리면서
거부감을 터트렷다면
부모의 목을 조르지는 않았을듯,